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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

2015.12.14 09:30


미국 국방부가 사용하는 객체 지향적 컴퓨터 언어(Object-orientated computer language)와 과학계에 종사하는 여성을 홍보하기 위한 기념일에 자신의 이름을 빌려 준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여성의 오픈소스(Open Source) 운동 참여를 늘리기 위한 비영리단체에 자신의 이름을 빌려준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사람은 바로 기계에 연산을 수행하도록 명령하는 컴퓨터 명령문을 처음 만든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입니다.


<에이다 킹 러브레이스(Ada King Lovelace)의 초상화>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da_Lovelace_portrait.jpg)


본명이 오거스타 에이다 바이런(Augusta Ada Byron)인 러브레이스는 1815년에 11대 웬트워스(Wentworth) 남작부인인 앤 이사벨라 밀뱅크(Anne Isabella Milbanke)와 유명한 낭만파 시인 바이런(Byron) 경(1788-1824)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열렬히 사랑했지만 결혼 생활은 길지 않았고, 러브레이스가 태어나자마자 바이런 경이 가족을 떠난 뒤로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러브레이스의 어머니는 당시 여성으로는 드물게 캠브리지 대학교 교수 출신의 스승들로부터 철학, 과학, 수학을 배웠고, 자신의 딸도 같은 길을 걷도록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같은 거칠고 무모한 기질을 일깨울지도 모른다는 어머니의 우려 때문에 러브레이스는 아버지 바이런의 시를 읽는 것이 금지되었지만, 여러 명의 스승에게 수학과 불어, 그리고 과학을 배웠습니다. 선구적인 여성 과학자 매리 서머빌(Marry Somerville)과 기호논리학의 지지자였던 유명한 수학자 오거스터스 드 모르간(Augustus de Morgan) 등이 러브레이스를 가르친 스승이었습니다.


<1873년에 판화로 새겨진 바이런 경(1788-1824)의 초상화>


러브레이스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 후 긴 병치레 기간 동안 여러 보모들의 손을 거치며 간호를 받았습니다. 13세 때는 지독한 홍역 때문에 몸이 마비되어 거의 1년 동안 침대에 누워 지냈고, 회복된 후에도12개월 동안 목발에 의지하여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공학 분야를 특히 좋아했던 영리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였는데요. 종이 위에다 자신만의 비행기를 설계하고 비행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비행학』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17세였던 1833년 6월, 러브레이스와 어머니는 런던 매릴번에서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가 주최한 파티에 참석했는데요. 그 곳에 참석한 손님들은 배비지의 작업물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고 그의 미분기의 축적 모형을 보았습니다. (관련 글: http://blog.lgcns.com/950)


러브레이스의 스승인 오거스터스 드 모르간도 그 파티에 참석했으며, 그의 아내 소피아(Sophia)는 그 기계가 러브레이스를 얼마나 열광시켰는지 후에 이처럼 설명했습니다. "다른 방문객들은 그 대단한 기계가 동작하는 것을 빤히 보면서, 뭐랄까 감히 표현하자면 마치 미개인이 거울을 난생 처음 보았을 때나 총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보인 것과 같은 그런 모습을 보였는데, 바이런 양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계의 작동을 이해하고 그 발명품이 놀랍도록 신기하다는 것을 알아챘어요.”


배비지를 처음 만난 지 2년 뒤에 러브레이스는 윌리엄 킹-노엘(William King-Noel)과 결혼하여 킹 부인이 되었고, 3년 뒤에는 러브레이스 백작부인이 되었습니다. 킹 부부에게는 세 아이가 있었고, 모두 대담한 기질로 영국을 멀리 떠나 모험과 여행을 즐겼는데요. 맏이인 바이런(Byron)은 16세에 집을 나가 선박의 목수로 일하다가 26세에 안타깝게도 사망하였습니다. 둘째 아들 랄프(Ralph)는 탐험가이자 유명한 등산가가 되었으며, 후일 이탈리아 돌로미테 산맥의 한 봉우리는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딸인 앤 블런트(Anne Blunt)는 아라비아산 말의 품종을 보존할 목적으로 유럽 최초로 아라비아 사막을 횡단한 여성이 되었습니다.


러브레이스는 정규 대학교육을 받지는 못했는데요. 여자가 대학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1878년이 되어서야 런던 대학교가 영국 최초로 여학생을 받아들였을 정도니 말이죠. 하지만 러브레이스의 남편은 수학과 과학에 대한 아내의 관심을 이해하고 지원했습니다. 러브레이스는 배비지의 작업에 여전히 큰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미분기에 대한 그의 강의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도 자주 방문하면서 기계 장치지만 현대 컴퓨터의 주된 요소와 기능을 많이 갖고 있는 그 획기적인 해석기관 설계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배비지는 러브레이스의 독창적인 사고와 수학적 재능에 깊이 감명을 받아 그녀를 "숫자의 마술사”라고 불렀습니다.


1842년에 배비지는 토리노 대학교에서 해석기관에 대한 강의를 했습니다. 이 때 청중들 중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엔지니어 루이지 메나브레(Luigi Menabrea)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 강의에 대해 프랑스어로 감상문을 썼는데요. 제네바 대학교 도서관에서 이 글이 출판되기도 하였습니다. 러브레이스는 이 감상문을 영어로 번역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요. 배비지는 러브레이스가 그 기계를 매우 잘 이해했기 때문에 러브레이스의 번역문에 자신의 주석을 덧붙이도록 권했습니다. 8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러브레이스는 세부적 논증과 수학적 관찰 및 증거들로 이루어진 장문의 평을 덧붙였는데요. 이는 원래의 감상문보다 세 배나 긴 내용으로 문제 해결의 중대한 돌파구를 만들었습니다.


이 주석에서 러브레이스는 스승인 오거스터스 드 모르간에게서 배웠던 기호논리학이 해석기관에 적용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그리고 배비지의 제안에 따라 러브레이스는 주석의 마지막 단원에 베르누이(Bernoulli) 수 계산을 위해 해석기관에 필요한 일련의 명령문을 기록했습니다. 대부분의 컴퓨터 역사가들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이 명령문은 역사상 처음으로 작성되어 발표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1843년 후반에 사이언티픽 메모아즈(Scientific Memoirs) 저널에 실렸습니다.


<베르누이 수 계산을 위한 해석기관의 알고리즘 도해>

 

러브레이스가 내린 또 다른 결론은 훨씬 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해석기관은 마치 자동으로 장식 패턴을 발생시키는 자카드식 문직기가 꽃과 잎사귀를 직조하듯이 대수 패턴을 짠다"고 열의에 찬 어조로 쓰면서 "해석기관이 단순한 '계산 기계'와 어떻게 바탕이 다른지"를 설명하고 "해석기관은 온전히 그 자신의 위치를 갖는다"고 주장했는데요. 배비지는 주로 수치표를 만들기 위해서 산술 목적으로 해석기관을 사용하는 데 집중한 반면, 러브레이스는 그 목적 이상의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녀의 주석에서는 해석기관이 "숫자 외의 다른 것에도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다른 것을 "해석기관의 작동 표기법 및 메커니즘"의 관점에서 표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해석기관은 단순한 수량이 아닌 무엇인가를 대표하는 숫자에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알파벳 글자나 이미지 또는 음악과 같이 숫자 및 연산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어떤 것을 해석 또는 처리할 때 이 기관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화성학에서 음의 높이 나 작곡에 있어 이러한 표현식 및 변환을 허용한다고 가정하면, 해석기관은 어느 복잡한 경우나, 어느 범위의 음악이든지 작곡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우리는 이런 개념을 이해하고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생각이 정말로 획기적이고 선구적인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배비지는 해석기관을 완성하지 못했고, 그래서 러브레이스의 주석과 초기 프로그램은 사장되어 긴 시간 동안 거의 잊혀졌습니다. 


러브레이스는 건강이 좋지 않아 늘 힘들어 했지만 과학, 기계, 수학 등에 대한 멈출 수 없는 호기심 때문에 광범위한 독서를 계속했습니다. 그녀의 사교 범위에는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전신 개척자인 찰스 휘트스톤(Charles Wheatstone), 만화경의 최초 발명자이며 박식한 학자였던 데이빗 브루스터(David Brewster) 등 당대의 최고 과학자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1849년에 브라이튼에 살고 있던 유명한 작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찰스 디킨스는 러브레이스가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사람 중 하나로, 그녀는 침상에서 디킨스의 소설 ‘돔비와 아들’을 읽고 있었습니다.


러브레이스가 마지막으로 했던 중요한 외출은 1851년에 찰스 배비지와 함께 한 것이었는데요. 두 사람은 런던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에 참석했습니다. 그 당시에 그녀는 자궁암 진단을 받은 상태였으며, 이듬해에 한창 나이인 36세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와 같은 나이였죠. 본인의 요구에 따라 그녀는 노팅엄셔에 있는 자신의 아버지 옆에 묻혔습니다.


최근 그녀가 생전에 주고받았던 상당한 양의 서신들 중 일부가 그녀의 생에 대해 많은 조사를 거쳐 씌어진 전기와 함께 출판되었는데요. 이 책의 출판과 함께 그녀의 역할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미국 국방성은 1979년에 그녀의 이름을 따서 한 컴퓨터 언어의 명칭을 ‘Ada’라고 붙였으며, 그 언어는 현재 철도 선로 배정, 항공 교통 관제, 군용기 항공전자공학 등의 대규모 실시간 어플리케이션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1998년부터는 영국 컴퓨터 학회 아카데미에서 컴퓨팅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러브레이스 메달을 수여하고 있는데요. 2009년에는 저널리스트인 수 샤먼-앤더슨(Suw Charman-Anderson)이 에이다 러브레이스 데이(ALD)를 제정했고, 오픈 소스 개발자인 메리 가디너(Mary Gardiner)와 리눅스 커널 개발자 발레리 오로라(Valerie Aurora)는 에이다 이니셔티브(Ada Initiative)를 설립했습니다. 이 두 가지 모두 과학, 컴퓨팅, 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 학자를 홍보하고, 시대를 앞서간 최초의 프로그래머였던 빅토리아 시대의 한 여성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A Smart, Creative World: Past and Future' 연재 현황]


(1) 컴퓨터의 탄생, 시대를 앞서간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

http://blog.lgcns.com/950


(2)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

http://blog.lgcns.com/982


(3) ENIAC: 세계 최초의 빠른 컴퓨터

http://blog.lgcns.com/1001


(4) 디버깅의 신화,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

http://blog.lgcns.com/1021


(5) 초기 컴퓨터의 진화

http://blog.lgcns.com/1042


(6) 컴퓨팅의 미래를 보여준 더글러스 엥겔바트

http://blog.lgcns.com/1060


(7) 웹의 발명: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

http://blog.lgcns.com/1165


(8) 인터넷의 탄생

http://blog.lgcns.com/1171


(9) 위키의 탄생

http://blog.lgcns.com/1175


(10) 로봇의 발전

http://blog.lgcns.com/1182


글 ㅣ클라이드 기포드 (Clive Gifford) 




Links 

http://www-history.mcs.st-and.ac.uk/Biographies/Lovelace.html

A text-only biography of Ada Lovelace


http://www.newyorker.com/tech/elements/ada-lovelace-the-first-tech-visionary

New Yorker article on Ada Lovelace and her impact.


http://www.fourmilab.ch/babbage/sketch.html

The English translation of Menabrea’s notes on Babbage’s Analytical Engine 


notes by Ada Lovelace.


Ada, the Enchantress of Numbers: A Selection from the Letters of Lord Byron’s Daughter and Her Description of the First Computer – Betty Alexandra Toole (Strawberry Press, 1998, Kindle eBook, 2010).


Ada’s Algorithm: How Lord Byron’s Daughter Ada Lovelace Launched the Digital Age – James Essinger (Gibson Square Books, 2013).




Posted by IT로 만드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갑니다 LG C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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