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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의 눈, 2014년을 새롭게 조망하다 - 사이버펑크의 바이블 <서기 2019 블레이드 러너> -

2014.03.28 10:31



이 원고는 LG CNS 신상민 과장의 영화 칼럼입니다. 영화 속에 숨겨진 메시지를 찾아가는 과정에 집중하는데요. 이 칼럼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재미를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인류는 전 세기에 걸쳐 집요하리만큼 과학 기술의 발달을 추구하며 수많은 업적을 이룩해 왔는데요. 다른 이면에는 자신들이 이루어 내고 있는 발전이 가져오게 될 사회의 변화를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이 괴리 속에서 탄생한 장르가 바로 ‘사이버펑크’입니다.

 

사이버펑크는 SF의 한 장르로 볼 수 있는데요. 보통 기술 발전에 못 따라가는 인간의 윤리나, 사회 체제의 모순성 등을 다루죠. 주로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안드로이드나, 체제 유지를 위한 자유 억압, 미래 사회의 암울함 등이 단골 소재이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터미네이터>나, <이퀼리브리움>, <아일랜드>, <토탈리콜> 등이 이 범주에 속합니다. 이런 ‘사이버 펑크’라는 영화 장르의 바이블(Bible)이 된 영화가 바로 오늘 중심으로 소개할 <서기 2019 블레이드 러너>입니다. 


<서기 2019 블레이드 러너>는 1982년 작입니다. 2019년이면 5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1982년도에 2019년을 상상했다는 것 자체가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어쨌든 영화를 보면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의 젊은 시절을 감상하실 수가 있으며, 한때 뭇 총각들을 잠 못 이루게 했던 청춘 스타 숀 영(Sean Young)도 나오고, 터미네이터보다 더 터미네이터 같은 룻거 하우어(Rutger Hauer)의 모습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최고의 명장면은 레플리컨트(Replicants, 복제인간)인 룻거 하우어가 죽을 위기에 처한 해리슨 포드를 구하고, 해리슨 포드 앞에서 독백을 하며 죽어가는 장면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은 빗속의 눈물처럼 세월 속에 잊혀지겠지. 이제 죽을 시간이 되었어.”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고요하고도 침울한 클라이막스를 보여줍니다.     

 

재미있는 점은 <서기 2019 블레이드 러너>는 전 세계적인 붐을 불러일으킨 또 다른 SF 영화인 <E.T>와 거의 같은 시기에 출시되었는데요. 당시에는 <E.T> 의 위세에 눌려 전혀 빛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흥행과 상관없이 그 뒤에 나오는 SF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들은 거의 모두 <서기 2019 블레이드 러너>의 분위기를 답습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정도로 이 영화의 파급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 영화 자체가 영화사적으로 의미가 큰 것을 떠나서, 굉장히 철학적이고 현실적인 메시지가 많이 담겨 있습니다. 

 

해리슨 포드는 레플리컨트인 숀 영과 사랑에 빠져 영혼의 안식을 찾습니다. 마치 인간과 레플리컨트의 화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숨겨놓은 반전은 해리슨 포드 자신도 레플리컨트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독이 관객에게 선사하는 일종의 (좀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빅 엿’인 셈인데, 영화 내내 인간성을 찾기 위해서 치고 받았지만, 결국에는 그게 다 인간에게 ‘사용되고 있는’ 레플리컨트들 간의 꼭두각시놀음이라는 거죠. 이렇게 되는 이유는 인간이 레플리컨트에게 기억을 만들어 넣기 때문입니다. 이 주입된 기억 때문에 레플리컨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굉장히 혼란스러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마지막 장면에서 룻거 하우어의 뇌까림으로 그것이 심어준 것이든, 진짜 겪었던 것이든 중요하지 않다는 해답을 어느 정도 제시해 주고 있기는 하죠. 


그런데 룻거 하우어는 격투 중에 손바닥 한가운데가 쇠꼬챙이로 뚫립니다. 굳이 신체의 다른 여러 군데를 놔두고 손바닥을 쇠꼬챙이로 뚫렸다는 것, 그리고 그 꿰뚫린 손으로 해리슨 포드를 살려준다는 것에서 감독은 레플리컨트에 예수를 투영하고자 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치 지배계급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대신 희생당하고 있는 피지배계급의 현실과 지배계급의 구원자는 곧 피지배계급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처럼요.  


레전드는 레전드라 불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설사 2019년이 그렇게 영화에서만큼 칙칙해지진 않을지라도 그것은 외형일 뿐,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영화에서 그려놓은 암울함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혹시 우리는 지금 레플리컨트와 같은 존재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1982년에 바라본 2019년은 절망 그 자체였다. 

영화의 배경이 된 그 미래가 코 앞으로 다가온 지금, 외형이야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살아가는 모습의 어두운 부분은 제대로 그려진 듯하여 씁쓸하다.>



ㅣ글 신상민 과장 LG CNS 품질서비스팀 

Posted by IT로 만드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갑니다 LG C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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