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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시리즈의 모든 것, 역대 '제임스 본드' 분석

2012. 11. 14. 10:00


<출처: 스카이폴 영화 공식 홈페이지>


2012년은 영화사상 최장수이자 첩보영화를 대표하는 007시리즈와 시리즈의 팬들에게 꽤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시리즈가 탄생한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고,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로 연기를 펼치는 세 번째 작품 <스카이폴>이 개봉했기 때문이지요. <스카이폴>은 007 시리즈의 탄생 5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단지 기념비에만 그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제작 초기부터 <스카이폴>은 샘 멘데스라는 다소 이색적인 감독에게 연출이 맡겨지면서 의외의 면을 선사했습니다. 과연 그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스카이폴>은 반 백년을 맞이한 시리즈의 모태를 분명히 하고 가려는 시도를 했다는 데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제임스 본드가 초반부터 시대에 걸맞지 않게 '발터 PPK(위 포스터에서 들고 있는 권총)'를 사용한 것, 수십 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애스턴 마틴 DB5'가 등장하는 것에서도 <스카이폴>의 목적이 보였습니다.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탄생했던 이 시리즈가 왜 계속 이어져왔고, 또 앞으로도 이어져야 하는 것인지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죠. 그런 의미에서 'MI6'의 존폐를 두고 열린 청문회를 통해 알프레드 테니슨이 시인 '율리시스'의 한 구절을 읊은 M의 대사는 전 세계에 있는 관객을 향한 일종의 선언이었습니다. 다니엘 크레이그를 영입하여 새로이 출발한 2006년의 <카지노 로얄>이 일대 전환점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나, 어쩌면 진정한 007 시리즈의 리부트는 <스카이폴>을 기점으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출처: 007 시리즈 공식 홈페이지>

제임스 본드를 앞세운 007 시리즈는 이언 플레밍의 소설에서 출발했습니다. 영국 해군의 정보부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었던 이언 플레밍은 기자로 근무하면서 첩보소설인 007 시리즈를 집필했습니다. 그 첫 작품은 1953년의 [카지노 로얄]입니다. 네, 이 소설은 위에서 언급한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 데뷔작이자 마틴 캠벨 감독이 연출한 007 시리즈 <카지노 로얄>의 원작입니다. 이 소설이 정식으로 영화화가 된 것은 2006년이 처음이었습니다. 출판된 지 60년 가까이 흘렀는데 최근에야 제작됐다고 하니 뭔가 이상하죠? 물론 <카지노 로얄>도 이전에 일찌감치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007 시리즈의 전담 제작사인 'EON'이 아닌 ‘콜롬비아’가 영화화를 진행했습니다. 이걸 설명하려면 좀 복잡합니다만, 축약해서 말하자면 판권 문제가 걸려서 돌고 돌아 2006년에야 정식으로 제작될 수 있었습니다.  첫 소설인 [카지노 로얄]이 아니라 <살인 번호>가 007 시리즈 영화의 첫 작품이 된 데도 동일한 이유가 있습니다. 

 

007 시리즈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

007시리즈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 지위, 영화의 배우나 감독과 관련된 것들이지요. 

첫째, 과연 007 시리즈의 아이콘인 '제임스 본드'의 이름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My name is) Bond, James Bond"라는 멋진 대사를 낳은 바로 그 이름 말입니다. 뜻밖에도 제임스 본드는 실존했던 인물입니다. 이언 플레밍이 갖고 있던 [서인도제도의 새들]이라는 책을 쓴 미국의 조류학자가 다름 아닌 제임스 본드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특색 없고 로맨틱하지도 않은 평범한 이름을 원했던 이언 플레밍은 1952년에 제임스 본드를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에게 부여했습니다. 실제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에게도 사전에 허락을 구했고 나중에 만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둘째, SIS 또는 MI6에 소속된 제임스 본드의 계급은 뭘까요? 바로 중령입니다. <스카이폴>에서도 M이 제임스 본드의 부고를 쓰면서 중령이라고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소설을 포함하면 60년 가까이 제임스 본드는 만년 중령이네요.

셋째,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배우는 모두 영국연방 출신입니다. 시리즈 자체가 영국의 자존심이라 감독도 동일한 규칙을 갖고 있었습니다. 유수의 감독들이 007 영화를 연출하길 원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이 전통은 <퀀텀 오브 솔라스>에서 독일 태생의 마크 포스터가 연출을 맡으면서 깨졌습니다. 이번에 다시 영국의 샘 멘데스에게 메가폰이 넘어왔으니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007시리즈는 23편이 제작된 만큼 다양한 배우들이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는데요, 시리즈의 복잡한 판권 문제처럼 배우 캐스팅과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많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제임스 본드 부터, 너무나 의외였던 제임스 본드, 그리고 가장 최근작인 <스카이폴>의 제임스 본드까지! 역대 제임스 본드들을 분석해보며 시리즈를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아래사진들의 모든 출처는 해당 영화 공식 홈페이지입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공식페이지

흔히 1대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배우는 숀 코너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영화를 기준으로 하면 숀 코너리가 맞지만 무대를 넓히면 이 남자, 미국인인 배리 넬슨이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최초의 배우입니다. 잠깐, 방금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배우는 모두 영국연방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냐고요? 맞습니다. 배리 넬슨은 영화가 아니라 1954년에 미국의 CBS 방송국에서 제작한 <클라이막스!-카지노 로얄>의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습니다. 이 TV용 영화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시리즈로 제작하고 있었던 <클라이막스!-카지노 로얄>의 에피소드 중 하나였습니다.

배리 넬슨의 <클라이막스!-카지노 로얄>은 미국에서 제작하는 바람에 설정의 일부가 변경됐습니다. 일단 제임스 본드가 아닌 '지미 본드(Jimmy Bond)'로 불렸고, 영국이 아닌 미국의 'Combined Intelligence'라는 기관의 요원이었습니다. 2006년작 <카지노 로얄>에서 제프리 라이트가 연기했던 ‘펠릭스’의 이름은 ‘클라렌스’로 바뀌었으며, 제임스 본드와는 정반대로 미국이 아닌 영국의 요원으로 등장했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배리 넬슨의 제임스 본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외모가 역대 제임스 본드와는 다른 스타일을 가졌죠.

참, 앞에서 영화 ‘카지노 로얄’은 판권 문제가 있었다고 했었죠? 그 시작이 바로 배리 넬슨이 출연한 <클라이막스!-카지노 로얄>이었습니다. 막 첫 소설인 [카지노 로얄]을 출판하고 이언 플레밍은 판권을 단돈 600달러를 받고 팔았습니다. 이것이 여러 사람을 거쳐 돌고 돌아 비로소 이온 프로덕션의 손에 들어가면서 2006년에야 정식으로 제작됐습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공식페이지

뭐니뭐니해도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를 정립한 배우는 숀 코너리입니다. 숀 코너리는 007시리즈 제작으로 유명한 이온 프로덕션이 영화사에 일 획을 긋게 될 것임을 알리게 된 최초의 007 영화인 <살인 번호>에서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습니다. 신사다운 행동과 터프한 외모 및 성향을 가진 그로서는 여성편력까지 아우르는 제임스 본드에 적격이었죠. (여담입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의 자존심인 007 영화의 주요 제작자이자 숀 코너리를 기용한 알버트 로몰로 브로콜리는 미국인입니다. 그의 딸인 바바라 브로콜리는 대를 이어서 이온 프로덕션을 운영하며 007 영화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숀 코너리는 역대 최고의 제임스 본드라는 평을 종종 듣고 있지만 이언 플레밍은 그의 캐스팅을 처음에는 반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소설 속의 제임스 본드와는 달리 숀 코너리는 스코틀랜드 출신이고, 제임스 본드가 상류계급인데 반해 숀 코너리는 노동자 계급인 것 등 캐릭터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작자였던 해리 살츠만과 알버트 브로콜리는 숀 코너리의 남성적인 면모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 그를 캐스팅했습니다. 영화가 개봉한 후에는 이언 플레밍도 완벽했다면서 숀 코너리를 칭찬했다고 하니 제작자들의 훌륭한 안목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심지어 이언 플레밍은 나중에 발표한 소설인 [여왕 폐하 대작전]에서 제임스 본드를 스코틀랜드 혈통이 있는 것으로 설정을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정작 [여왕 폐하 대작전]에서는 이 설정과 맞지 않는 조지 라젠비가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습니다. 

숀 코너리는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를 자신에게 입히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영화배우로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거의 무명배우나 다름없었으나 <살인 번호>를 필두로 총 여섯 편의 007 영화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쌓았고, 타 배우와 달리 이를 발판으로 최근까지도 배우로서 확고한 위치를 다졌습니다. 아울러 <카지노 로얄>처럼 이온 프로덕션이 제작하지 않은 또 하나의 007 영화인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에서도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습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공식페이지

데이빗 니븐은 이 글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는 1967년의 <카지노 로얄>에서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습니다. 이 영화는 말했다시피 판권 문제가 걸려서 제작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이언 플레밍의 첫 소설이었던 [카지노 로얄]의 판권을 최초로 구입한 쪽은 CBS 방송국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것이 몇 배 이상의 가격으로 팔리다가 1999년에야 MGM에서 자그마치 1,000만 불을 지불하고 소니로부터 판권을 구입해 2006년에 <카지노 로얄>을 제작했습니다. 이후에도 1967년의 <카지노 로얄>은 판권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아 소송까지 가는 등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카지노 로얄>(1967)을 제작했던 사람은 당시에 소설의 판권을 가지고 있던 찰스 펠드먼입니다. 그는 원래 이 영화를 이온 프로덕션과 함께 제작하고 싶어했지만 협상에 실패했습니다. 이온 프로덕션의 해리 살츠먼과 알버트 브로콜리는 <썬더볼 작전>을 케빈 맥클로리와 공동으로 제작했으나, 결과가 썩 좋지 못했던 탓에 <카지노 로얄>을 같은 방식으로 제작하는 것에 부정적이었습니다. 대신에 50만 불이라는 거액을 주고 판권을 구입하려고 했는데 찰스 펠드먼이 이를 거절했습니다. 결국 <카지노 로얄>(1967)은 그가 단독으로 제작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숀 코너리를 주연배우로 기용하려고 했으나 출연료로 당시로서는 거액이었던 1백만 불을 요구(거절 의사)하자 포기했습니다.

숀 코너리마저 물 건너 가자 펠드먼은 아예 패러디 영화로 007시리즈를 제작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오프닝 크레딧부터가 기존의 것을 약간은 코믹하게 차용했었죠.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된 배우가 데이빗 니븐이라는 것에도 이런 의사가 담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군인 출신인 데이빗 니븐은 <살인 번호>에서 캐리 그랜트와 함께 제임스 본드 역으로 물망에 올랐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살인 번호>에 출연했던  우르슬라 안드레스는 <카지노 로얄>(1967)에서 베스퍼 린드로 출연했습니다. 이 밖에도 <카지노 로얄>(1967)은 비록 패러디였지만 출연진은 화려하기 그지없어 피터 셀러스, 오손 웰스, 우디 앨런, 데보라 커, 윌리엄 홀덴, 존 휴스턴, 장 폴 벨몽도 등이 영화를 위해 기꺼이 출연했습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공식페이지

조지 라젠비는 단 한 편의 영화에서만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비운(?)의 인물입니다. 이온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007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인물 중 최단명을 기록한 불명예를 안고 있죠. 호주에서 태어난 조지 라젠비는 자동차 판매원으로 일하다가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모델로 데뷔했습니다. 일찍이 세계 최고의 모델로 올라섰다는 것은 그가 왜 숀 코너리의 뒤를 이어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게 됐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죠? 제임스 본드를 상징하는 것으로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잘 다듬어진 몸매에 말끔한 수트는 절대 빼놓을 수 없죠.

'수트빨' 외에도 조지 라젠비는 군인으로 복무한 경험이 있다는 것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숀 코너리보다 젊은 데다가 액션에도 능하니 여러모로 기존의 제임스 본드를 대체할 적임자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조지 라젠비의 연기 경력이 전무하다시피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두 번 산다>를 끝으로 007 영화를 떠난 숀 코너리의 빈 자리를 라젠비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숀 코너리의 그늘을 단숨에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그가 출연한 <여왕 폐하 대작전>은 의외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조지 베이커가 일부 장면에서 제임스 본드의 목소리를 더빙하는 등으로 연기는 악평을 면하기 힘들었으나, 조지 라젠비는 스턴트를 직접 소화하면서 거친 액션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이로 인해 <여왕 폐하 대작전>의 제임스 본드는 이언 플레밍의 소설에 훨씬 근접한 캐릭터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공식페이지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배우 중 최단명에 이어 최장수 배우가 나오는군요. 바로 12년 동안 총 일곱 편에 출연한 로저 무어입니다. 조지 라젠비가 <여왕 폐하 대작전>만 출연하고 하차하자 이온 프로덕션은 속편인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서 재차 숀 코너리를 불렀습니다. 그것도 아주 파격적인 조건으로 말이죠. 일단 출연료만 1백만 불 이상을 받았고 런닝 개런티 계약까지 맺었으며 촬영이 길어지면 추가 수당까지 받기로 했을 정도였습니다. 버트 레이놀즈를 비롯한 몇몇 배우를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하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자 궁여지책으로 숀 코너리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 이어 숀 코너리는 <죽느냐 사느냐>에도 출연할 것을 제의 받았습니다. 대가는 총 5백만 불 이상이라 귀가 솔깃했을 것도 같지만 끝내 거절하자 로저 무어가 그를 대신했습니다. 사실 로저 무어를 추천한 사람이 다름 아닌 숀 코너리였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버트 레이놀즈, 폴 뉴먼, 로버트 레드포드와 같은 미국인을 원했으나 알버트 브로콜리는 영국연방의 배우가 연기해야 한다는 것을 고수했습니다. 그리하여 로저 무어는 숀 코너리가 완전히 빠진 007 영화를 구원할, 아니 구원해야만 하는 인물로 <죽느냐 사느냐>에서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습니다. 이온 프로덕션에게 있어서 로저 무어는 이전의 두 배우와 달리 티비를 통해 이름을 꽤 알렸고, 45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제임스 본드를 맡았다는 것에서 모험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는지 <죽느냐 사느냐>는 일단의 변화를 보입니다.

<죽느냐 사느냐>를 맞이한 이온 프로덕션에게 최고의 난제가 무엇이었을까요? 간단합니다. 한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했던 숀 코너리를 이제야말로 확실하게 대체하는 것이 최우선이었죠. 그래서 로저 무어가 들어오자 숀 코너리의 제임스 본드를 최대한 지우고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더해서 로저 무어의 나이도 영향을 줬는지 <죽느냐 사느냐>의 제임스 본드는 한결 차분하고 유머와 재치를 갖춘 신사의 이미지로 변모했습니다. 담배 대신에 시가를 피우거나 제임스 본드가 즐기는 술인 보드카 마티니가 아닌 버번 위스키를 택한 것에도 그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역대 제임스 본드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을 활동했다는 걸 보면 이 시도가 적중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로저 무어는 2004년에 아카데미 시상식이 실시한 설문에서 최고의 제임스 본드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공식페이지

로저 무어가 <뷰 투 어 킬>을 끝으로 007 영화에서 떠나자 이온 프로덕션에게는 10여 년 전과 동일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과연 누가 그의 뒤를 이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후보로는 샘 닐, 멜 깁슨 등의 배우가 있었으나 마지막에 제임스 본드로 낙점된 인물은 ‘티모시 달튼’이었습니다. 그는 로저 무어가 그랬던 것 이상으로 007 영화에 출연하게 될 즈음에 인지도와 경력을 웬만큼 가지고 있었던 배우였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티모시 달튼의 경우에는 이미 오래 전에 제임스 본드의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숀 코너리가 떠난 직후에 만들어질 예정이었던 <여왕 폐하 대작전>이 그 무대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티모시 달튼은 고작 20대 초반이라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기엔 너무 어려 인연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한참의 세월이 흘러 마침내 제임스 본드로 007 영화에 출연하게 된 티모시 달튼은 로저 무어의 첫 출연작이 그랬듯이 <리빙 데이라이트>에서 전과는 다른 제임스 본드를 연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탄생한 제임스 본드는 최근의 다니엘 크레이그에 앞서 전례 없이 진지하고 어두운 'Dark Bond'였습니다. 아마 티모시 달튼이라고 하면 금세 떠올리게 되는 갈라진 턱이나 강렬한 인상이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 것 같죠. 혹은 그것 때문에 티모시 달튼이 제임스 본드를 연기할 배우로 선정됐을 수도 있고요.

비평적으로 봤을 때 티모시 달튼이 가져온 제임스 본드의 변화는 절반의 성공이었습니다. 스스로가 소설의 열렬한 팬이었던 그는 당차게 새로운 007 영화는 변해야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전의 영화가 원작에서 벗어나 판타지적인 면을 추구한 것을 지적한 것이었는데, 이 덕분인지 티모시 달튼이 출연한 007 영화는 더욱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묘사를 갖춘 첩보물로 탄생했습니다. 비평가와 원작의 팬들이 호평을 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반대로 로저 무어가 출연했던 007 영화에 익숙한 팬들에게는 그가 그린 냉정하고 진중한 이미지의 제임스 본드가 도리어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런 탓에 티모시 달튼은 조지 라젠비 다음으로 짧은 생명력을 보여주면서 단 두 편에만 출연하는 데 그쳤습니다. 원래 한 편 더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제작사간의 소송으로 인해 제작이 지연되면서 포기했습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공식페이지

티모시 달튼이 출연했던 007 영화 두 편은 흥행에서 완전히 실패한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살인 면허>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고, 특히 미국 시장에서는 역대 최저의 성적을 거두는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할 예정이었으나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오랫동안 007 영화를 배급하고 있던 'MGM/UA'와 제작사인 이온 프로덕션 사이에 또 판권 문제가 불거진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데 장장 4~5년이 걸렸습니다. 마침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시리즈 17편인 <골든아이>의 촬영을 앞두고 있었지만 끝내 티모시 달튼은 제임스 본드를 떠났습니다. 그로 인해 차기 제임스 본드를 차지한 인물이 피어스 브로스넌입니다.

아마 피어스 브로스넌은 현재 20~30대인 관객들에게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배우일 겁니다. 티모시 달튼처럼 피어스 브로스넌도 <골든아이> 전에 제임스 본드를 연기할 뻔했습니다. 그 영화가 바로 티모시 달튼이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첫 영화인 <리빙 데이라이트>입니다. 원래 티모시 달튼은 스케줄 문제로 출연하지 못하게 됐고, 차선책으로 피어스 브로스넌에게 제의가 왔으나 그 또한 다른 이유 때문에 제임스 본드의 수트를 입지 못했습니다. 국내에서도 방송된 적이 있는 피어스 브로스넌의 출세작이자 티비 드라마인 <레밍턴 스틸>이 문제였죠. 피어스 브로스넌은 <레밍턴 스틸>이 시즌 4를 마지막으로 종료하면서 다행히 <리빙 데이라이트>에 출연할 수 있는 환경이 됐습니다. 그러나 방송사인 NBC에서 갑작스레 결정을 뒤집고 시즌 5를 제작하기로 했던 게 화근이 됐습니다.

그렇다고 티모시 달튼처럼 촬영 스케줄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제작자인 알버트 브로콜리가 "제임스 본드는 레밍턴 스틸이 될 수 없고 레밍턴 스틸은 제임스 본드가 될 수 없다"라고 천명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레밍턴 스틸>을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탐정인 레밍턴 스틸의 이미지가 제임스 본드와 일면 겹쳐지는 부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실제로 피어스 브로스넌의 제임스 본드를 보면서 레밍턴 스틸을 연상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죠. <레밍턴 스틸>에서 능구렁이 같았던 그의 연기가 제임스 본드에서도 이어졌거든요. 피어스 브로스넌이 최초로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던 <골든아이>는 6년이 넘어서야 제작된 속편이었고, 최초로 여성(주디 덴치)이 M을 연기했으며, 소련이 해체된 후에 처음으로 제작하는 007 영화라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이에 부응하듯이 혹은 보란 듯이 <골든아이>는 손에 꼽힐 정도로 흥행에서 대성공을 거둬 피어스 브로스넌은 시리즈의 새로운 구세주로 떠올랐습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공식페이지

피어스 브로스넌이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던 초기에 시리즈의 구세주로 떠받들어지긴 했으나 그것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어나더 데이>는 007 영화를 몰락시킨 주범으로 봐도 망언은 아닙니다. 분명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비평에서는 딱히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특히 시리즈의 오랜 팬과 평론가, 더 나아가 이전에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던 로저 무어도 <어나더 데이>가 정통 첩보물에서 벗어나 SF 영화를 방불케 한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유명한 일화지만 국내에서는 더 심했었죠. <어나더 데이>의 배경이 다름 아닌 한반도였는데, 할리우드 특유의 어쭙잖은 오리엔탈리즘이 낳은 고증은 차마 눈 뜨고 못 볼 지경이었습니다. 설상가상 차인표가 북한군으로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가 거절한 이유와 사연이 공개되면서 관람거부까지 일었습니다. (후에 이 역할은 한국계 배우인 릭 윤에게 돌아갔습니다) 관람거부는 좀 과한 측면이 있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걸 떠나서 <어나더 데이>는 그냥 재미가 없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결국 <어나더 데이>는 피어스 브로스넌이 출연한 마지막 007 영화가 됐습니다. 그 이전에 피어스 브로스넌은 시리즈의 네 편에 출연하기로 계약을 맺기도 했었지만, 많은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더 이상 제임스 본드가 되진 못했습니다. 50세를 맞이한 그의 나이도 걸림돌이 됐습니다. 피어스 브로스넌의 뒤를 이을 배우로는 휴 잭맨, 제라드 버틀러, 에릭 바나, 클라이브 오웬 등의 쟁쟁한 인물이 거론됐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제임스 본드를 낚아챈 인물은 전혀 의외의 결과에 가까운 다니엘 크레이그였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대물림하여 007 영화를 제작하던 바바라 브로콜리가 선택한 첫 제임스 본드였습니다. 바바라 브로콜리는 매튜 본의 장편 데뷔작인 <레이어 케이크>에서 다니엘 크레이그를 보고 제임스 본드로 염두에 뒀었다고 합니다. 이 선택은 당시에 커다란 반발을 샀습니다. 일단 제임스 본드가 금발에 벽안이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팬이 많았고, 이를 제외하더라도 외모에서 다니엘 크레이그는 기존의 배우들과 사뭇 달랐습니다. 티모시 달튼 이상으로 다부진 얼굴과 체구를 보면 도저히 수트가 생명인 제임스 본드가 떠오르질 않았죠.

우려와 달리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카지노 로얄>(2006)이 개봉한 후에 찬사로 바뀌었습니다.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것만 같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다방면에서 선배들과 달랐습니다. 일례로 제임스 본드가 즐겨 마시는 술인 보드카 마티니만 하더라도 그랬습니다. "젓지 않고 흔들어서" 마시던 것이 관례(?)였으나 <카지노 로얄>의 한 장면을 보면 바텐더가 저을지 흔들지 묻자, "내가 그딴 걸 상관할 것 같아?"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건 냉정과 침착 그리고 여유를 유지하던 여타 제임스 본드의 면모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죠. 뿐만 아니라 <카지노 로얄> 자체가 007 영화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 비로소 판권을 해결하고 색다르게 다니엘 크레이그를 기용해 영화를 찍었다는 것부터가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과격한 폭력(고문 장면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침)과 박력이 넘치는 액션은 '제이슨 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을 부정하기 어렵지만, 007 나름의 전통과 노선을 지키면서 흥행과 비평에서 공히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퀀텀 오브 솔러스>를 거쳐 <스카이폴>에 이른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다섯 편을 추가로 계약한 덕분에 앞으로도 쭉 볼 수 있을 예정입니다. 또한 시리즈의 의미를 다시한번 각인시켜주듯 <스카이폴>이 진정한 리부트를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한층 기대를 크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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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ilove1t.blog.me BlogIcon 아기코끼리 2012.11.14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리 넬슨은 제가 상상하던 제임스의 모습과 무척 예상밖?의 얼굴이네요 ㅎㅎ
    전 조지 라젠비가 젤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 )

  2. Ba 2013.02.19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정말 잘쓰시네요 글 올라온지 몇달이 지났지만 좋은글에 리플이 없는게 아까워서 리플 달고갑니다

  3. 로로프 2013.03.07 2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잘쓰셨네요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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