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Life

웨어러블 장치를 보는 시선

2013.12.19 09:58

 

지난달 말, 스마트콘텐츠 콘퍼런스 2013 강연을 듣기 위해 삼성동 코엑스 컨퍼런스장을 찾았습니다. 이 행사를 찾은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웨어러블 장치의 시연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는데요. 그 기대를 100% 채우고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제품을 직접 보는 것 외에 생각해봐야 할 고민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웨어러블 장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웨어러블을 사용하면 더 편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텐데요. 이는 너무 막연하거나 포괄적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체성을 띄지 못하는 것이죠. 그 이유는 아마 웨어러블 장치들을 충분히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오는 웨어러블 장치들이 제 의미를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도 장치가 가진 기능의 문제가 아닌 이용자가 웨어러블 장치를 막연하게 바라보는 시선에도 원인이 있습니다.

사실 웨어러블 장치 업체의 접근은 이용자의 요구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우리는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해 웨어러블 장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는 데 비해 업체들은 생산적 관점으로 웨어러블 장치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날 강연에 나섰던 웨어러블 기술 부문 연사들은 하나같이 “웨어러블 기술이 우리가 상상했던, 또는 그 이상의 흥미로운 디지털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를 고민하고 있는 이용자와 눈높이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 볼 부분이 있습니다. 이용자는 왜 웨어러블 장치로 불리는 안경을 쓰고 HMD를 얹고 시계를 차며 옷을 입는가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어떤 정보를 소비하기 위해서일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장치들은 정보의 소비를 돕는 한편 정보를 모아 묶음으로 내놓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콘텐츠인데, 이날 발표했던 연사들은 자기들이 만들고 있는 웨어러블 장치를 통해 의도하지 않았던 콘텐츠의 등장을 반가워했습니다.

<스티븐 레이크 탈믹 대표가 팔뚝에 차고 있는 마이오에서
근육의 움직임을 감지해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상황을 직접 시연하고 있다>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잠깐 살펴볼까요? 스티븐 레이크 탈믹 랩스 창업자가 들고 나온 마이오(MYO)는 팔뚝에 착용하여 손가락이나 팔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는 근육의 변화를 감지해 움직임을 제어하는 웨어러블 장치입니다. 원래 시각장애인이 앞에 있는 사물을 감지하기 위한 바이오 메디컬 목적으로 개발된 기술이지만, 이를 일반인에게 적용하면 새로운 감각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요. 그런데 스티븐 레이크는 마이오의 개방형 API를 내놓고 난 뒤 예상치 못한 콘텐츠의 등장에 깜짝 놀랐답니다. 단 몇 줄의 코딩으로 공중에서 다룰 수 있는 에어 키보드가 만들어지는가 하면 요즘 한창 인기인 드론을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12시간 동안 해커톤을 진행할 땐 정말 희한한 콘텐츠가 쏟아져 나왔다고 하네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창의적인 것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그저 놀라웠다고 덧붙였습니다.

오큘러스 리프트를 소개한 서영도 한국 지사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두 개의 LCD를 겹쳐 3D 입체 영상을 볼 수 있는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MD)지만, 이용자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영상을 표시하는 가상 현실 장치인데요. 처음에는 게임에 많이 응용될 거라 예상했으나, 6천 대 이상의 개발자 키트가 공급된 지금은 모델 하우스나 박물관, 영화 트레일러 등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고 하네요. 한 때 가상 현실을 다뤄 명성을 떨쳤던 세컨드 라이프도 오큘러스 리프트를 이용하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진짜 가상 세계를 그려낼 것이란 기대가 됐습니다.

 

하지만 마이오나 오큘러스 리프트용 콘텐츠는 모두 개발자의 코드가 들어가야 합니다. 일상적인 움직임만으로 콘텐츠를 만들기는 어려운데요. 그렇다면 이러한 코드를 넣지 않고 정말 평범한 움직임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물론 있습니다. 이날 연사 가운데 마치나의 린다 프란코 대표가 들고 온 미디 컨트롤러 재킷은 웨어러블 장치가 콘텐츠 시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나의 미디 컨트롤러 재킷은 옷의 배 부위나 가슴, 팔꿈치 등 여러 부위에 다양한 센서를 부착해 착용자가 움직이거나 컨트롤러를 조작함으로써 소리에 변형을 줍니다. 이것을 스마트폰이나 PC용 응용 프로그램에서 기록하면 하나의 믹싱된 음악, 또는 전혀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지요. 린다가 이 재킷을 만든 이유는 어느 날 록 콘서트를 보던 중 평범하게 멀뚱히 서서 디제잉을 하는 모습이 너무 심심하고 재미없어 좀 더 역동적인 무대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는데요. 이 재킷을 입으면 온몸을 비비고 움직이면서 디제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너무 전문가답게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음악적 감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선 이 재킷을 어떻게 다룰지 모를 테니까요.

 

그럼 이제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오래전 HBO에서 배우 루이스 C.K의 스페셜 코미디가 방송됐는데, 최근 모 커뮤니티에서 그 영상의 장면을 캡처해 올린 글이 SNS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루이스 C.K가 딸의 학예회를 갔는데 거의 모든 부모가 아이들의 모습을 스마트폰에 담고 있더랍니다. 페이스북에 올리려고 말이죠. 멀쩡한 두 눈으로 직접 보면 풀HD보다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스마트폰 화면에서 보는 부모들을 조롱하는 이야기였는데, 뜻밖에 많은 이들이 이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나타내더군요.

아이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기록을 남기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머리로 기록하고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것들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 때문에 우리가 직접 느껴야 할 그 경험을 가리고 있는 커다란 장치에 방해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기록할 수 있는 웨어러블 장치를 찾게 될 날이 머지않을 겁니다. 그 시대를 대비해 진행되는 것이 구글 글래스 같은 웨어러블 장치입니다. 구글 글래스에는 많은 기능이 있지만, 우리의 두 눈으로 보고 싶은 것을 직접 보고 느끼고 기록하는 것만큼 소중한 기능이 또 있을까요? 우리는 지금 기계적인 관점으로 웨어러블 장치를 보고 있지만, 우리가 아직 보지 못했던 관점의 콘텐츠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웨어러블 장치의 숨겨진 의미가 아닐까요?

 

 

l 글 최필식 (www.chitsol.com, 필명 '칫솔')

Posted by IT로 만드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갑니다 LG C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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