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Life

인문학으로 바라본 검도 이야기

2013. 7. 19. 15:21

왜 검도를 하느냐고 누군가 물으면 ‘바람의 검심’이란 유명한 애니메이션을 보고 시작했다고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사실 사소하고 우연한 동기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회사 생활하면서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던 차에, 회사 주위에 다닐 만한 운동시설이라곤 단지 검도장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그 당시 남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저 역시 얼마 다니다 금세 그만둘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현재까지도 검도를 하고 있지요.

삶은 우발적인 마주침의 결과에 따라 의미가 생성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검도 역시 저에게 우발적 마주침이 의미를 생성한 결과입니다. 우연한 계기로 저에게 다가왔고, 지속을 통해 어느덧 삶 일부분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죠. 아마 제가 오랫동안 회사생활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의도하지 않았던 검도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검도에 관한 글을 써 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고단자도 아닌데 단지 오래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글을 쓰는 것 같아 무척 쑥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한참을 거절할까 고민하다 문득 검도를 철학적으로 해석해 보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아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고 후회하는 데는 불과 몇 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단순함, 평상심, 무사도라는 주요 키워드를 통해 검도에 담긴 인문학적 의미를 살펴보기 위함입니다. 이 글을 통해 검도 기술을 배우고자 한다면 당장 읽는 것을 접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다만 검도와 관련된 인문학 지식에 관심이 있다면 나름 읽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 1> 검도 시합

제1장. 칼의 단순함

고객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고객을 상대로 이미지 트레이닝하고 연습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농담 삼아 그렇다고 해주고 싶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죠. 그 이유는 날아오는 칼을 피하거나 상대를 칠 생각을 하느라 고객을 생각할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고객에 대한 스트레스는 해소되어 버립니다. 검도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생각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게 되어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이 단순해지기 때문이죠. 어쩌면 검도의 매력은 단순함에 있을지 모릅니다.

단순함의 원리에 관한 중세철학이론으로,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중세 사회는 사상의 과잉으로 복잡하고 난해한 철학적인 논쟁이 판을 치는 시대였습니다. 14세기 영국의 수도사 오컴은 “원칙은 불필요하게 복잡해서는 안 된다.”라는 명제로 당시의 철학 풍토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사람의 피부를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털을 깎아내리기 위해서 면도날은 예리하면 예리할수록 좋습니다. 진리에 이르는 길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예리하게 다듬어 쓸데없는 것들을 걷어 내면 진리에 이르는 길이 가까워진다는 것이죠.

검도 역시 단순함의 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무수한 연습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기술의 화려함이 아니라, 일격필살의 단순함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검도에서는 검을 마구 휘둘러서 맞히는 것을 의미 있는 타격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기검체일치(氣劍體一致)가 이루어져야만 한판, 즉 일격필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격필살을 하기 위해서는 치는 순간에 망설임이 없어야 합니다. 검도는 사느냐 죽느냐 둘 중 하나이기 때문에 망설임이 없어진 그 순간에 뛰어들어가서 상대를 공격해야만 합니다. 생각이 복잡하면 의식 과잉 상태가 되어, 마음의 안정을 잃고 근육이 지나치게 수축합니다. 머릿속이 복잡하면 경쾌한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없죠. 이 때문에 검도에서는 기회라고 판단되면 망설임 없이 칼을 던지는 반복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연습하는 동안 잡생각을 버리고 검도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검도에서 극단적으로 단순함을 추구한 실제 사례가 있습니다. 막부 말에 명성을 떨친 사쓰마의 지겐류(示現流)라는 검법입니다. 지겐류에는 오직 한 가지, 정면 베기만 있습니다. 이를 위한 연습은 죽도로 나무통을 내려치는 과정을 1만 번 반복하는 것뿐입니다. 세게 치고 더 세게 치고, 더욱더 세게 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극단적이게 단순한데도 실전에서는 엄청난 파괴력이 발휘됩니다. 1877년 세이난 전쟁 당시 칼 한 자루 들고 돌진하는 지겐류 무사들에게 총포를 앞세운 관군이 전멸한 전설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전장 처리 과정에서 두 동강 난 시체들을 보고 지겐류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검도에서 단순함의 위력은 강력합니다.


<그림 2> 태도(太刀)

 

제2장. 흔들리지 않는 마음

검도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싸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서로가 공격할 때는 마음이 동요하게 됩니다. 그 순간에 틈이 생겨 공격을 당하게 되지요. 또한, 마음이 동요하게 되면 적절한 공방도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검도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 즉 부동심(不動心) 또는 평상심(平常心)을 갖는 것을 궁극의 경지로 삼고 있습니다. 사실 평상심은 선불교에서 나온 용어입니다. 중국 당나라의 고승 마조(709~788)는 “평상시의 마음이 도”라는 유명한 설법을 남겼으며, 사찰에 모셔진 부동명왕은 세속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상징하는 불교의 신장입니다. 검도와 선불교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에도 막부시대 말기 다쿠앙(澤庵宗彭, 1573∼1645) 선사의 『부동지신묘록』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다쿠앙은 특히 무사들이 겪어야 했던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사회적인 살벌한 분위기 속에도 진정한 무사의 자세는 부동심이라고 정리하였습니다.


<그림 3> 다쿠앙 선사

검도에서 기술보다 평상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주는 유명한 일화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8세기 영주 야마노우치는 자신이 거느린 다인(茶人)의 훌륭한 다도를 자랑하고자 다인을 에도(지금의 도쿄)로 데리고 갔습니다. 다인은 다도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없었지만, 그밖에는 문외한이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에도의 사무라이에게 결투 신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주에게 치욕을 줄 수도 없거니와 어차피 죽을 바에야 명예롭게 죽고 싶은 마음에 그는 검도관장을 찾아가 검도 방법을 물었습니다. 검도관장은 측은한 마음이 들었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인이 침착한 태도와 완벽한 집중력으로 다도 의식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결투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말했죠. 그리고 실제로 그는 다음날 결투에서 이겼습니다. 다인의 침착한 모습을 본 상대가 달아나 버렸기 때문이죠. 그는 평생 정성스럽게 수행한 다도 의식을 통해 평상심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인은 특정 분야에서 정성스럽게 매진하면 궁극적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관념이 있습니다. 검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인 미야모토 무사시는 “검선일여(劍禪一如)”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검과 선은 궁극적으로 하나라는 것이죠. 살생을 금기하는 불교와 살생을 목적으로 하는 검도가 어떻게 일치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난감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를 궁극적인 마음 상태인 평상심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3장. 무사도

“라스트 사무라이(2003)”라는 영화를 보면, 검도 수련을 통해 무사도 정신을 알아가는 톰 크루즈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검도가 단지 살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무라이의 정신수련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사실상 전투에서 칼은 창이나 조총에 미치지 못하였지만, 사무라이의 명예와 무사도 정신의 상징으로 검은 사무라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의 사무라이에게는 무사도라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전국 시대에만 해도 사무라이는 주군을 바꾸어 다른 주군을 모실 수 있었으며, 하극상도 어느 정도 인정되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후에 일본에 납치되어 간 조선 유학자 강항(姜沆, 1567~1618)에 의해 성리학이 전달되어 에도 막부 성리학의 중심이 만들어졌고, 이를 통해 충, 효, 인 등 유교적 윤리와 자기 절제를 중시하는 무사도가 탄생하였던 것입니다. 니토베 이나조(1862~1933)는 청일 전쟁을 계기로 『무사도』라는 유명한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이는 성리학의 이념으로 무사도를 설명한 책으로, 니토베가 소개한 사무라이 정신은 원래 조선의 선비 정신이었습니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무라이는 칼을 든 선비인 셈이죠. 그러나 얼핏 정신적인 측면에서 보면 유사해 보이지만, 근대사에는 판이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무사도 정신으로 무장한 사무라이는 피를 두려워하지 않고 전진하여 메이지 유신을 달성하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선비는 이데올로기 논쟁에 빠져 나라를 잃고 말았죠. 어디서 이런 차이가 왔을까요?

검도 관점에서 보자면, 검도의 목적은 결국 살거나 아니면 죽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이 명확한 목적을 위해 수련을 하기에 특정 검도 유파나 형식만을 고집할 수 없습니다. 특정 유파라고 해서 상대의 칼이 비켜가지 않기 때문이죠. 즉 이기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일본은 형식적인 주자학에서 실용적인 양명학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었고, 오히려 주도세력인 막부가 외국 문물의 수용에 적극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선비는 이념적 대립을 정치적 도구화하여 주류세력이 소중화 사상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실학을 받아들인 북학파나 양명학을 추종하는 강화학파 등이 있었으나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살펴볼 때, 검도가 목적에 대한 수단의 유연성 개념을 제공하는 데 이바지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은 아닐 것입니다.


<그림 4>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

이 나이면 미야모토 무사시 같은 검도 고수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왜 검도를 열심히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지곤 합니다. 이럴 때면 경영학의 석학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 1909~2005)’를 생각합니다. 드러커는 젊은 시절 베르디의 오페라를 보고 감동을 하여 자료를 찾아보니, 그 오페라를 만든 베르디가 80세 노인이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에 큰 깨달음을 얻은 그는 95세까지 왕성한 저작 활동을 하며 열정적으로 살았습니다. 저 역시 드러커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고, 그래서 꾸준히 할 수 있는 검도를 선택했을 뿐이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어쩐지 충분한 대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동안 다시 한 번 자문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자기중심’이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명의 무사가 백 명과 싸워야 할 경우, 검객들이 정렬하거나 비스듬히 무사에게 접근해야 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첫 번째 상대에 집중한 다음 신속하게 대열을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상대하는 적을 분산하여 차례대로 싸우는 원리이지만, 이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중심이 잡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검도는 중단세를 통해 자기중심을 잡는 연습을 무한히 반복시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살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수많은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하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결국 자기중심을 잡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요?

 

참고 문헌
1. “표준 검도 교본”, 고규철 감수, 2006, 일신서적
2. ”미야모토 무사시의 그림으로 읽는 오륜서”, 미야모토 무사시, 양억관 옮김, 2009, ㈜봄풀출판
3.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 2011, 사계절
4. “상투를 자른 사무라이”, 이광훈, 2010, 따듯한 손
5. “사무라이의 나라”, 이케가미 케이코, 남영수 옮김, 2008, 지식노마드
6. “전쟁의 기술”, 로버트 그린, 안진환 옮김, 2007, 웅진 하우스
7. “단무지와 부동심” 허도일, 2009, 무카스 미디어
8. “길 없는 길”, 최인호, 2008, 여백

 

 

l 글 신재규 총괄 컨설턴트 l LG CNS 엔트루컨설팅사업부문
l 글 손현우 전임 컨설턴트 l LG CNS 엔트루컨설팅사업부문

Posted by IT로 만드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갑니다 LG CN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4.01.07 0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BlogIcon meianrt 2015.06.20 2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3. BlogIcon 천동욱 2015.12.04 1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수정 혹은 보완 되었으면 하는 부분이 '검도'와 '검술'에 대한 차이를 정확히 표현하는게 좋을 것 같네요. 일본에서도 그 두가지는 확실히 차이를 두어 말을 합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