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nsight

할리우드, 그래픽 기술을 공유하다

2019.04.10 09:30

요즘 영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 바로 그래픽 기술입니다. SF나 애니메이션 장르에선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래픽 완성도를 최고로 높일 수 있을까요? 아마 좋은 인재 영입, 인프라 지원, 대규모 예산 투입, 넉넉한 제작 기간 확보 등을 떠오르실 겁니다. 그런데 할리우드에선 이 외에 새로운 시도를 하나 시작했습니다.


경쟁사들이 모여서 함께 기술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렇게 만든 기술은 영화계는 물론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공개하겠다고 하는데요. 이 일을 하는 주체는 영화계 오픈소스 연합체 ‘Academy Software Foundation(ASWF) 우리말로 ‘아카데미 소프트웨어 재단’입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 Academy Software Foundation(ASWF): https://www.aswf.io/


l ASWF 로고 (출처: ASWF)


 할리우드의 기술 연합체 ASWF


IT 업계에선 협업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문화가 존재합니다. 그게 경쟁자라고 해도 말이죠. 왜 그럴까요? 모바일 앱을 만든다고 가정해봅시다. 개발자는 어떤 종류의 앱을 만들지, 기능이나 디자인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모바일 운영체제를 새로 만들거나 나만의 인터넷 접속 기술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모바일 앱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기술들은 플랫폼 업체가 제공되거나 대부분 오픈소스 기술로 공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개발자는 공개된 기술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필요한 기능 혹은 디자인만 신경 쓰고 차별화를 꾀합니다. 이후에 어떤 개발자는 오픈소스 기술을 사용하는 것에 벗어나 자신만의 오픈소스를 개발하고 공개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기업이나 소속에서 벗어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이 해당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모이고 함께 기술을 발전시킵니다.


영화계는 왜 함께 기술을 만드나 즉, ASWF가 출범하게 된 계기도 이와 연결됩니다. 일단 할리우드 영화 업계 84%[각주:1]가 애니메이션이 혹은 시각효과(VFX) 관련해서 오픈소스 기술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타사 혹은 대학, 커뮤니티들이 만든 기술을 가져다 썼던 셈이죠. 그러던 중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몇몇 오픈소스 기술의 경우 버전이나 라이선스 관리하는데 여러 어려움이 생긴 겁니다.


이 문제는 오픈소스 기술에 기여하고 싶은 사람이나 사용하고 싶은 사람 모두에 불편함을 주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레 할리우드 내 VFX 관계자들은 2016년부터 모여 어떻게 하면 영화계에서 자주 쓰이는 오픈소스 기술을 더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그 결과로 2018년 8월, 비영리 재단인 ASWF를 발표합니다.


이 재단의 주체는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 협회(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입니다. 이 협회는 ‘오스카 시상식’이라고 불리는 아카데미 어워드를 주관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8천 명이 넘는 영화계 인사들이 속해 있으며, 시각효과 관련 실무자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습니다.


 

ASWF는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 협회 혼자가 아닌 리눅스 재단과 파트너십을 맺어 설립됐습니다. 리눅스 재단의 도움을 통해 특정 기업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기술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하는데요. 기존 오픈소스 기술들을 관리하는 것 외에 오픈소스 기술 개수를 늘리고 그 수준도 높일 계획이라고 합니다. 동시에 할리우드가 직면한 기술 문제를 함께 풀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ASWF 설립 멤버[각주:2]를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기업들이 많습니다. 드림웍스, 월트 디즈니부터 스누피, 아이스 에이지 애니메이션 작업을 한 블루 스카이 스튜디오, 반지의 제왕, 어벤져스 그래픽 기술을 담당한 웨타 디지털 같은 시각 효과 전문 기업까지 ASWF에 합류했습니다.


여기에 오토데스크, 인텔, 구글 등의 인프라 기업들도 함께했습니다. 최근엔 워너 브라더스, 소니 픽처스, DNEG, 블랜더, VES가 기업 회원으로 새로 들어왔습니다. ASWF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누구나 자유롭게 무료로 참여하고 기술 기여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대신 기업 회원의 경우, 회원비를 내서 금전적인 후원을 제공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l ASWF 설립멤버 현재는 위 기업 외에 워너 브라더스, DNEG, 소니 픽처스, 블랜더가 기업 멤버로 들어갔다. (출처: ACMSIGGRAPH)


그렇다면 ASWF는 어떤 오픈소스를 만들고 있을까요? 사실 엄밀히 말하면, ASWF는 현재 직접 오픈소스를 개발하는 건 아닙니다. 현재 ASWF 역할은 리눅스 재단이나 아파치 재단과 비슷합니다. 다시 말해 ASWF는 새로운 오픈소스 기술을 키워주고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합니다. 프로세스는 이렇습니다.


여느 오픈소스 프로젝트와 똑같이 전 세계 누구나, 개인이나 단체든 무료로 ASWF에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제안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종류는 영화계에서 사용될 만한 기술들로 한정됩니다. ASWF 내에는 15명으로 전문가로 구성된 TAC(Technical Advisory Committee) 즉, 기술 자문 위원회가 존재합니다.


● TAC(Technical Advisory Committee): https://github.com/AcademySoftwareFoundation/tac


TAC는 제출된 오픈소스를 보고 검토합니다. 이후 투표를 통해 해당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지원할지 말지 결정합니다. 승인을 받은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이후 기술 자문이나 인프라, 홍보 지원을 받게 됩니다. ASWF 깃허브 페이지를 보면 오픈소스 제안서 템플릿, 회의록, 검토 과정 및 기술 변경 과정까지 투명하게 공개됐으니 관심 있는 분이면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 ASWF 깃허브 페이지: https://github.com/AcademySoftwareFoundation/tac


● 오픈소스 제안서 템플릿: https://github.com/AcademySoftwareFoundation/tac/blob/master/process/proposal_template.md


TAC와 별도로 ASWF에는 관리 이사회(Governing Board) 제도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시각효과 관련 경력이 20년이 넘은 전문가들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ASWF 방향에 자문을 주기도 합니다. 관리 이사회에서 롭 브레도우(Rob Bredow)은 특히 대내외적으로 ASWF를 홍보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 그래픽스 분야의 대표 컨퍼런스인 시그래프(SIGGRAPH)나 방송 등에서 ASWF를 알리는 식입니다. 참고로 롭 브레도우는 소니 픽처스 이미지웍스, 루카스 필름에서 CTO를 맡은 바 있으며, 현재는 인더스트리얼 라이트&매직(ILM)[각주:3]에서 기술 총괄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표 작품으로 ‘스타워즈 한 솔로’, ‘엣지 오브 투모로우’, ‘스타트랙’,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등을 작업했다고 합니다.


l 롭 브레도우 ILM SVP가 2018년 시그래프 컨퍼런스 현장에서 ASWF를 발표했다. (사진: ACMSIGGRAPH)


 영화계에서 만든 오픈소스 기술들


ASWF는 현재까지 2개의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승인했습니다. 오픈컬러IO(OpenColorIO, 줄여서 OCIO라고도 한다)와 오픈VDB(OpenVDV)입니다. 먼저 오픈컬러IO는 색상을 조정해주는 솔루션입니다. 이 기술은 소니 픽처스 이미지웍스에서 2003년 처음 개발했다가 오픈소스화됐습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스파이더맨 홈커밍’,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등 자사 애니메이션에도 이 기술이 활용됐습니다.


l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애니메이션에 오픈컬러IO를 적용해서 수정한 결과(오른쪽)

(출처: https://github.com/imageworks/OpenColorIO)


오픈VDB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에서 개발한 시각효과 기술입니다. 드림웍스 내부에서 사용되다 2012년에 오픈소스로 배포됐습니다.  이 기술은 데이터, 메모리, 스토리지 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특히 모래, 연기 같은 시각효과를 보다 정교하게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이 역시 ‘마다가스카 3’, ‘보스 베이비’, ‘트롤’ 등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에서 사용됐다고 합니다.


ASWF에 합류한 기업들이 만든 오픈소스 기술도 한번 살펴보죠. 소니픽처스는 오픈컬러IO를 제외한 7개의 오픈소스를 공개했습니다. 드림웍스는 2개입니다. 디즈니 산하에 있는 자회사 스튜디오도 각자 오픈소스 기술을 공개했습니다.


픽사, 루카스 필름 기업에서 개발한 것을 포함해 17개를 볼 수 있습니다. 각 기업은 기술 형태는 아니지만, 연구논문도 꾸준하게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유하는 중입니다. 이들이 공개한 대부분은 플러그인이나 파일 포맷 혹은 데이터 처리 기술 혹은 프로그래밍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목록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 소니픽처스이미지웍스 오픈소스: http://opensource.imageworks.com/

● 픽사 오픈소스: https://graphics.pixar.com/

● 드림웍스 오픈소스: https://research.dreamworks.com/openSource.html

● 월트디즈니 오픈소스: https://disney.github.io/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공개한 오픈 데이터입니다.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구름 이미지와 애니메이션 ‘모아나’에 사용됐던 섬 이미지 데이터를 누구나 다운로드할 수 있게 열어 두었습니다. 홈페이지에 남긴 설명에 따르면[각주:4] 해당 이미지는 내부에서 매우 어려움을 겪은 작업이며, 비슷한 경험을 겪을 다른 기업을 돕기 위해 공개했다고 합니다.


● 월트디즈니 오픈 데이터: https://www.technology.disneyanimation.com/collaboration-through-sharing


l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공개한 오픈 데이터. 실제 이미지 원본으로 연구자나 개발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열어 두었다. (출처: https://www.technology.disneyanimation.com/collaboration-through-sharing)


또한 ASWF 기업 멤버들이 협력해서 새로 만든 기술도 하나 있습니다. 2019년 1월  구글과 소니 픽처스 이미지웍스가 공동으로 만든 고성능 렌더링 관리 기술 ‘오픈 큐’입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 앞으로 전통 IT 기업과 영화계 업계와 협업도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오픈 큐 홈페이지: https://github.com/imageworks/OpenCue


이 외에도 openSourceVFX.org라는 홈페이지에 방문하면 현재 할리우드를 비롯해 영화업계에서 직접 만들고 자주 쓰는 60여 개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볼 수 있습니다.


● openSourceVFX.org: http://opensourcevfx.org/


l 영화계에서 많이 사용되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들(오른쪽 목록) (출처: ASWF)


여담으로 할리우드는 아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지브리 스튜디오에서도 오픈소스 기술을 공개했습니다. ‘오픈툰즈’라는 기술입니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튠즈’라는 백터 변환 및 채색 프로그램을 이용해 오랫동안 2D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2016년에 튠즈 판매기업인 드완고와 공동으로 튠즈의 오픈소스 버전을 만들었으며, 현재도 활발히 기술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 지브리 스튜디오: http://www.ghibli.jp/

● 오픈툰즈: https://opentoonz.github.io/e/

● 튠즈: https://www.toonzpremium.com/


저작권 문제에 민감한 영화계에서 오픈소스 문화가 발전하고 있다는 점은 참 흥미롭습니다. 어쩌면 미래엔 영화계의 리눅스, 안드로이드 부류의 소프트웨어가 탄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영화계의 구글 또는 모질라 재단과 비슷한 기업이 나서 오픈소스 주도권을 갖는 싸움을 벌어질 가능성은 없을까요? 앞으로 어떤 미래가 오든 ASWF가 영화계 기술 개발 문화에 새로운 발판을 마련한 것은 확실한 듯합니다.


글 l 이지현 l 테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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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What is the Academy Software Foundation?

https://blog.siggraph.org/2018/08/what-is-the-academy-software-foundation.html/


ACMSIGGRAPH Keynote Address 2018 Keynote Address 

https://youtu.be/kUoIbP1l9yA



  1. https://www.aswf.io/about/ [본문으로]
  2. https://www.aswf.io/members/ [본문으로]
  3. 루카스 필름의 자회사로 영화 특수효과 및 그래픽 전문 기업이다. 스타워즈 감독인 조지 루카스가 설립했다. [본문으로]
  4. https://www.technology.disneyanimation.com/islandscene [본문으로]
Posted by IT로 만드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갑니다 LG C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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