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미국에서 꿀벌들이 사라지는 현상이 확인되었습니다. 군집 붕괴 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 CCD)으로 불리는 이 현상은 해를 거듭하면서 북미 전역, 유럽에서도 포착되었고,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매년 30~40%의 꿀벌이 사라지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진드기, 바이러스, 곰팡이, 대기 오염, 농약 등 많은 원인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탓에 뾰족한 해결책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라진 꿀벌은 양봉 산업과 농업에 큰 손실입니다. 전체 30% 이상의 생산 작물이 꿀벌이 옮기는 꽃가루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는 약 150억 달러 규모입니다. 특히, 아몬드 등의 작물은 꿀벌을 대체할 수분 매개체가 거의 없어서 큰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양봉 업계에서는 꿀벌 감소로 연간 35% 이상 손실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꿀벌을 대체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오랫동안 산업에 끼친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꿀벌을 구하기 위한 노력은 여러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술 분야도 다르지 않습니다.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EPFL)의 LTS5(Signal Processing Laboratory 5)는 양봉 업계와 협력해 바로아 응애(Varroa Mites)로 불리는 진드기의 수를 확인하는 앱을 개발했습니다.
바로아 응애는 호주를 제외한 전 세계 지역에서 발견됩니다. 진드기가 붙은 꿀벌은 제때 대처하지 않으면 죽게 되죠. 그러나 진드기의 크기는 1mm에 불과하며, 벌통의 깊은 곳에 숨어있기 때문에 맨눈으로 확인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양봉가들은 벌통 아래에 떨어진 죽은 진드기로 감염을 확인하지만, 감염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정확한 방법은 아닙니다.
과거에도 진드기에 대처하는 디지털 기술은 존재했습니다만, LTS5가 개발한 앱이 유독 특별한 것은 인공지능(AI) 기술로 양봉가의 업무를 간소화하는 것에 있습니다. 연구진은 진드기 이미지를 수집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머신러닝 기술로 컴퓨터가 진드기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학습시켰습니다. 양봉가가 벌통을 촬영해 앱에 업로드하면, 웹 플랫폼의 머신러닝 모델이 이미지를 스캔해 수초 만에 진드기를 발견하고 수를 계산합니다.
l 진드기 감염 진단 앱 (출처: EPFL)
지금까지 진드기를 확인하는 기술은 별도 장치를 벌통에 부착하는 등 추가 비용과 관리가 요구되었습니다. 사진을 촬영하는 단순한 행위만으로 진드기 감염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건 양봉 산업에 큰 도움입니다. 농장별로 수집된 데이터는 머신러닝 모델을 개선해 정확도를 높이는 것으로 스위스 전체 진드기 침입을 추적해 지역적으로 대처할 방안을 마련하는 단초가 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진드기에 내성을 지닌 꿀벌 계통을 식별해 피해를 방지할 수 있겠죠.
인공지능은 꿀벌을 지키는 다른 방법에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월드 비 프로젝트(World Bee Project)'는 컴퓨팅 기술을 접목해 꿀벌을 보호하는 연구 프로젝트입니다. 영국 레딩 대학교와 오라클이 협력하는 이 프로젝트는 머신러닝과 클라우드 컴퓨팅을 활용해 대량의 꿀벌 데이터를 모니터링하는 '더 월드 비 프로젝트 하이브 네트워크(The World Bee Project Hive Network)'를 구축했습니다.
'스마트 하이브(Smart Hives)'로도 불리는 이 기술은 꿀벌들의 날개와 발 움직임, 온도, 습도, 꿀 산출량까지 꿀벌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클라우드 네트워크에 올리고, 분석한 데이터의 패턴, 경향, 상관관계를 머신러닝 모델에 학습시키는 거로 꿀벌이 줄어들 지표, 또는 수분 활동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조건을 검토해 빠르게 완화할 수 있게 돕습니다.
l 더 월드 비 프로젝트 하이브 네트워크 (출처: ORACLE Cloud)
스마트 하이브의 의미는 '보존'에 있습니다. 연구의 시작은 꿀벌이 급속도로 사라지면서부터입니다. 꿀벌을 보호할 명분이 생겼고, 기술이 도입되면서 특정 개체를 보존하기 위한 모델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즉, 개체에 대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 이를 위한 클라우드 컴퓨팅과 인공지능 기술이 개체 보존에 긍정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면, 꿀벌이 아닌 다른 개체의 보존에도 활용할 수 있겠죠. 오라클의 수석 비즈니스 이사이자 프로젝트 책임자인 존 아벨(John Abel)은 '기술이 보존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마트 하이브가 개체 보존에 완벽한 해결책은 아닙니다. 얻은 데이터에 효율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통찰력을 부여하는 것으로 검증된 데이터를 마련하는 게 주요 목적입니다. 검증된 데이터는 관련한 과학자나 연구원, 정책 입안자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유되어 지식공동체가 해결책을 찾는 데에 기회를 제공합니다.
낮은 비용으로 순도 높은 데이터를 빠른 시간에 생산함으로써 데이터에 대한 접근 권한을 낮추고, 꿀벌을 보존하기 위한 전방위적인 의견과 결과를 낳도록 유도합니다. 특정 문제에 해결책을 마련할 시간을 혁신적으로 단축할 수 있겠죠.
그럼 꿀벌 데이터를 수집할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미국 워싱턴 대학교의 연구팀은 꿀벌이 무인기처럼 움직이게 할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워싱턴 대학교 컴퓨터 과학 및 공학대 부문 부교수인 시암 골라코타(Shyam Gollakota)는 '우리는 자연에 있는 최고의 비행 기계를 활용하길 원했다.'라면서 '곤충은 스스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움직일 배터리를 충전하지 않아도 된다. 지방과 당분은 배터리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하고, 낼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연구진이 개발한 센서는 벌의 등에 장착할 수 있을 만큼 작습니다. 센서는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에 활용하는데, 내장된 배터리는 7시간 연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무인기는 비행까지 배터리를 소모하므로 10~20분 정도만 작동하는 것과 달리 벌은 스스로 섭취해 비행하므로 데이터 수집에만 배터리 소모를 집중하면 되기 때문이죠. 이를 위해 벌의 위치 파악에도 배터리를 덜 소모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l 살아있는 사물인터넷 플랫폼 (출처: University of Washington)
일반적인 GPS 센서를 탑재하면 전력 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특정 신호를 내보내는 안테나를 수신할 범위에 설치해 신호의 강도와 각도로 벌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했습니다.
센서 기술의 주요 목적은 농장 도입에 있습니다. 많은 농장이 꿀벌의 수분 활동으로 작물 재배에 도움을 받습니다. 농장을 돌아다니는 벌에 센서를 탑재하면 농장주는 농장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물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 무인기와 달리 작물 깊이 진입할 수 있기에 온도, 습도, 광도 등 요소에 대한 더 정교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또한, 벌은 개체와 환경에 따라 행동 양식이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농장마다 벌의 행동 양식을 파악할 수 있다면 벌의 생태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사물인터넷(IoT)의 한 갈래로 '살아있는 사물인터넷 플랫폼(Living Internet of Things Platforms)'이라고 부릅니다. 앞으로 센서에 카메라나 꿀벌의 두뇌에 전기 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센서를 탑재해 벌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통제할 방법을 얻길 원한다고 골라코타 교수는 말했습니다.
벌은 많은 연구를 통해 뛰어난 인지 능력과 학습 능력을 갖춘 곤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벌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다면 위험에 스스로 대처하는 방법이나 꿀을 얻는 효율적인 방법을 가르침으로써 생존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걸 위해선 벌에 대한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고, 살아있는 사물인터넷 플랫폼이 큰 역할을 하리라 전망됩니다.
로봇 기술도 꿀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러시아 국립 톰스크 폴리테크닉 대학(Tomsk Polytechnic University)은 꿀벌 로봇을 공개했습니다. 이 꿀벌 로봇은 자연 서식지가 아닌 온실에서 사용하도록 고안되었습니다.
꿀벌의 수가 줄어든 것과 함께 활동이 제한되는 계절에도 작물을 생산할 방법으로 딸기 등 주로 온실에서 재배하는 작물에 활용할 계획입니다. 로봇은 꿀벌의 행동을 모방하기 위해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며, 꽃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센서 기술로 주변 환경을 감지합니다. 연구진은 올해 로봇 꿀벌을 상용화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문제는 로봇 꿀벌의 도입이 비용보다 효율적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톰스크 폴리테크닉 대학의 꿀벌 로봇은 1차 개발 비용으로 140만 달러가 들었습니다. 로봇 꿀벌이 살아있는 벌처럼 넓은 범위의 수분 활동을 해결하려면 개발부터 운용 비용까지 감당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오히려 살아있는 벌이 더 경제적일 수 있죠.
l 꿀벌 로봇 모델 (출처: University Graz)
그래서 일부 로봇 공학자들은 로봇이 꿀벌을 완전히 대체하는 게 아닌 꿀벌과 상호작용해 통제할 수 있는 '바이오하이브리드 로봇(Biohybrid Robot)'을 개발합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 대학교 인공 생명 실험실(AL lab)은 꿀벌 로봇이 실제 꿀벌의 행동을 관찰하고, 유형을 익힘으로써 모방하는 실험을 수년 동안 진행했습니다. 연구실의 토마스 슈미클(Thomas Schmickl) 박사는 '우리는 꿀벌이 로봇을 받아들이고, 정당한 구성원으로 대접받길 원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꿀벌 로봇은 꿀벌 날개의 공기 흐름과 온도 등 의사소통에 필요한 몇 가지 자극적인 요소를 인공적으로 재현합니다. 일벌의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멈추도록 하는 여왕벌의 진동을 흉내 낼 수도 있습니다. 이로써 꿀벌 로봇은 군집 안에서 꿀벌의 행동을 지도하고, 관찰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프로젝트는 아직 개체를 보호하는 프로그램으로 나아가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꿀벌 로봇이 꿀벌 군락지에 융화한다면 검사를 위해 벌통을 여는 등 행위를 줄여서 양봉 산업에 도움을 주고, 나아가 자연의 다른 개체들과 벌이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연구함으로써 바이오하이브리드 로봇을 확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소수의 꿀벌 로봇만 투입되기 때문에 좀 더 경제적이면서 꿀벌을 보존하는 목적까지 달성할 수 있으리라 전망합니다.
꿀벌을 위한 첨단 기술은 꿀벌을 보호하고, 이해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지만, 궁극적인 성과가 그곳에만 있지 않습니다. 꿀벌을 이해하려는 연구는 결과적으로 다른 종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인공지능, IoT, 클라우드 컴퓨팅, 센싱, 로보틱스 등 기술이 인간의 삶만 아니라 공존하는 다른 생명체까지 영향이 미치게 되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글 l 맥갤러리 l IT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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