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기는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직업이 디자이너이다 보니, 많은 것들을 만들고 고치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무엇을 만드는 과정은 어렵습니다. 만들기를 하다 보면 쉽게 만들어지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다양한 기술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만들다 보면 이런 걸 왜 만들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생깁니다.
재미 삼아 이것 저것 만들다 보면, 만들기 자체가 취미이자 선행연구의 역할도 하게 됩니다. 최근에는 지금까지 만들었던 많은 것들과 인공지능이 접목되면서 음성인식 UI와 로봇과 같이 더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 수 있게 되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메이커와 프로토타이핑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메이커와 프로토타이핑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l 공연용 전자악기
메이커가 만드는 많은 결과물을 보면, 엔지니어,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그리고 발명가의 영역을 넘나들게 됩니다. 머릿속 아이디어를 실제 형태로 옮기며 만들다 보면 하나의 역량으로만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항상 처음부터 무엇을 제대로 알고 만들 수는 없습니다. 자료를 찾아보고 아는 사람을 찾아 물어보고, 만든 만큼 실험을 하다 보면 점점 최종 완성물의 모습에 다가갑니다.
물론, 그 전에 비싼 비용을 들여 센서나 부품 등의 하드웨어를 구입하면 프로세스가 조금 더 적극적이고 빨라지게 됩니다. 지금까지 전자 장구, 전자 가야금부터 인공지능 음성인식 자동차 UI와 이미지 인식 기반의 로봇까지 다양한 것을 만들고 있지만, 항상 예상하지 못했던 장벽에 막혀 좌절하곤 합니다.
어떤 때는 형태를 수정하거나 하드웨어의 부품을 바꿔 해결할 때도 있지만, 소프트웨어의 수정이나 알고리즘의 변화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결국, 답은 하나가 아니겠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상황에 맞게 실험하다 보면 최적의 답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만드는 과정이 고통스러운 건 이런 다양한 해결책을 추론하고 작동할 때까지 모든 과정을 실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l 전자악기 프로토타입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어려운 것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자 해금을 처음 만들 때도 학교의 목공제작실에서 사용하다 남은 나뭇조각을 얼기설기 엮고, 센서를 붙여 15분 만에 연주가 가능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습니다. 완성도가 높지 않았지만, 아이디어를 실물로 만들어 연주할 수 있었기 때문에 프로토타입의 장단점을 찾아 단점은 수정하고 장점은 발전시키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해금 연주자의 연주 방법이나 연주 특성을 설계에 반영이었습니다. 결국, 악기의 완성도는 연주자가 얼마나 편하고 정교하게 연주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한 번에 완벽히 모든 기능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하나씩 제대로 작동되는 것은 유지하고 부족한 것을 수정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반복해 원하는 것이 나올 때까지 반복하면 결국 어느 순간 원하는 만큼의 정교한 결과물을 만들게 됩니다. 그렇다고 여정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첫 번째 버전은 조금 더 수정해서 두 번째 버전으로 소프트웨어의 개발단계와 비슷하게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습니다. 전자해금도 그렇게 첫 번째 버전을 시작으로 4번의 업그레이드가 있었습니다.
l 로봇가야금 프로토 타입
최근 기술의 특징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디자인의 여러 가지 역량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의 모듈화로 인해 전문가의 도움 없이 센서나 모터의 부품들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3D 프린터로 직접 필요한 부품들을 출력해 개선하고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가 스크린을 넘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3D 프린팅과 같은 기술들이 동시에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의 속도도 그만큼 빨라지고 있습니다.
l 로봇 가야금 제작 과정 ‘3D 프린팅’
메이커는 전기•전자, 3D 프린팅, 로봇, 소프트웨어 등의 여러 기술을 활용하여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사람입니다. 결과물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실패했다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훌륭한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메이킹은 어설프게 얼기설기 엮어 만드는 팅커링(tinkering) 방식으로 제작하는 DIY(Do it Yourself) 문화의 일종입니다.
아이디어와 실험을 통해 무언가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제작 과정을 다른 이들에게 공개하고 공유하며 또 다른 기술과 융합 있도록 하는 것 또한 메이커 영역이자 메이커 운동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공유를 통해 커뮤니티 전체의 기술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사회 전체의 발전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만든다는 것이 소수의 사람이 하는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기관에서의 관련 교육과 제조 문화공간이 확장되고 있고 많은 사람이 참여할 기회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메이커 개념이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다양한 종류의 만들기를 하는 사람들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l 팹랩서울 (출처: http://fablab-seoul.org/)
이곳에는 3D 프린터만이 아니라 레이저커팅기, CNC 등의 디지털제조시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를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한 다양한 기업과의 파트너쉽을 통해 보다 폭넓은 메이커 문화를 확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메이커 문화를 통해 새로운 기술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으며, 또 새로운 기술을 놀이와 재미 차원에서 많은 이들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공공의 영역에서는 국립과천과학관의 무한상상실이 있습니다. 팹랩서울에서 3D 프린팅에 대해 배우기 시작할 무렵 무한상상실도 일반인에게 개방되었습니다. 제가 공식적으로 무한상상실 1호 사용자라고 하니 그 이전부터 무한상상실을 준비하신 분들도 참 대단한 분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새로운 기술에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메이커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큰 도움을 받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무한상상실에서 처음 3D 프린팅을 시작하면서 '연말까지 100개 정도의 프린트를 해봐야겠다'라는 다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시작이 6월 말 정도로 되었던 것 같은데 연말까지 제대로 된 결과물을 10개도 뽑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l 무한상상실(출처: https://ideaall.net/main/Main.do?req_site_id=HOMEPAGE)
방학 동안 거의 매일 '무한상상실'에 출근하다시피 다녔었지만, 아주 잘 나왔던 모델이 다음날 비가 오면 하루 종일 한 개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가서야 3D 프린터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과천 무한상상실이 문을 연 지 1년 정도 후 5배 이상 큰 규모로 확장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분이 시설을 사용하였고, 반응도 폭발적이었습니다. 건축가들은 새로운 건축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자동차디자이너는 전기자동차를 만들었으며 저는 학생들과 함께 UX 디자인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공간입니다.
또한, 관련 분야의 다양한 분들을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으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들이 결합하여 새로운 창조물이 탄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코딩이나 아두이노와 같은 4차산업 혁명의 기반 기술 교육은 벌써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l 청소로봇
또, 초창기에는 한글로 된 자료가 많지 않아 어려웠지만, 최근에는 국내에서 제조되는 아두이노 호환보드도 발매되면서 한국어로 된 온라인 자료와 동영상 등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로 된 자료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드는 자료가 충분히 있다고 해서 만드는 일이 쉽고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자료가 아무리 잘 나와 있어도 한 번에 구동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것은 3D 프린팅이 아니더라도 폼보드를 잘라서 만들거나 클레이등으로도 만들 수 있지만 전자 회로와 센서는 안 될만한 이유가 훨씬 더 많습니다.
l 청소로봇 구동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버전의 문제, 컴퓨터 기종이나 OS의 문제부터 하드웨어의 칩셋이나 드라이버의 문제까지 샘플에 나와 있는 환경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경우도 많지 않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검색하게 되고 대부분 실험해 보게 됩니다.
제 경우에도 프로그래밍이나 전기전자에 대한 기본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터넷에 나와 있는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깊지 않아 일단 여러 가지 샘플을 이것저것 다운받아 직접 실험해보면서 무엇이 되고 되지 않는지의 과정에서 체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변수들과 장벽들 때문에 수많은 메이커가 좌절을 경험했지만, 이 과정이 만들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실험의 과정이 끝나면 관련된 기술영역에 대한 원리를 이해하고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의 노하우가 쌓이게 됩니다. 이렇게 배운 지식은 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진짜 문제를 풀어낸 지혜로 쌓이게 됩니다. 만드는 일에는 아이디어와 기술 자체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해결해낸 프로세스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l 청소로봇 작동 영상
l 해금 프로토타입
프로토타이핑은 머리가 아닌 손으로 설계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기능이 구현 될 수 있는 형태와 크기가 결정될 때까지 진행합니다. 만들어진 프로토타입은 테스트가 가능한 수준으로 기능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빠르고 저렴하게 아이디어를 개선, 검증, 평가할 수 있습니다.
프로토타이핑은 최종결과물이 확정될 때까지 지속해서 진행해야 하는 번잡함은 있지만 여러 단계의 검증을 거치게 됨으로써, 최종적으로 큰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됩니다.
예전에는 제 연구실에 엉성하게 출력되는 1대의 3D 프린터가 전부였지만 지금은 다양한 해상도와 소재를 정교하게 출력할 수 있는 12대의 3D 프린터가 다양한 소재를 빠르게 출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종류의 프린터를 사용하고 튜닝하면서 정말 많은 실패와 좌절의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l 전자장구 연주 모습
메이커의 문화는 일단 실패해도 좋으니 재미있게 만들어 보자는 도전정신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경험으로 터득한 메이킹의 노하우와 지혜는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수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도 스마트시티 메이커톤에 삐약이 탐험대란 팀으로 참가했습니다. 커뮤니티 청소 로봇의 아이디어로 상당히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이 로봇은 하룻밤 만에 뚝딱 만들어졌지만, 메이커로서 만들어왔던 3D 프린팅, 오픈소스 하드웨어,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머신러닝 등의 다양한 기술이 접목된 기술의 집합체입니다. 이번 로봇에서는 처음으로 구글의 이미지 인식 엔진을 사용해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메이킹이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이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새로운 기술을 사용할 수 있으며 새로운 만들기의 목표를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만들다 보면 더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게 되고, 만들어진 아이디어는 단순히 재미로서 만이 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의 가능성까지 실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만들기는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기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글 | 박진현 교수 | 계원예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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