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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처럼 능숙한 로봇, 그리퍼(Gripper)에 도전한다.

2018.06.20 09:30

오랜만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한바탕 즐기고 나서 다음 날 일어나보니 거실과 방에 술병, 과자 봉지, 그릇, 쓰레기 등 온갖 잡동사니들이 널려 있습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과자 봉지, 술병들을 쓰레기통에 쓸어 담고 술잔과 그릇들을 주방 개수대로 가져다 놓습니다. 흐트러져 있는 방석과 TV 리모콘, 게임기도 원래 자리에 가지런히 올려놓고요. 이렇게 방 정리에 들어간 시간은 기껏해야 몇 분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지럽혀진 방을 정리하는 일을 로봇에게 맡긴다면 얼마나 걸릴까요? 로봇은 비전 시스템을 이용해 다양한 생김새와 재질을 가진 물건들을 인식하고 각각의 물건을 어느 곳으로 옮겨야 하는지를 빠른 속도로 계산할 것입니다. 그리고 물건들을 로봇 팔로 집어 원하는 곳에 내려놓아야 하죠. 이런 일을 하는 만능 로봇을 현재 기술로 구현하려면 아마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여러 로봇 기술이 필요한데 로봇 조작 기술도 그중 하나입니다. 로봇은 비전 시스템을 이용해 물체의 형태와 재질을 파악하고 로봇 팔 끝부분에 있는 그리퍼(Gripper)나 진공 흡착 컵을 이용해 물건을 집어 올려야 합니다. 물체의 형태와 재질이 제각각이어서 물체의 어느 지점에 어느 정도의 힘을 주어 집어 올려야 하는지 결정해야 합니다. 너무 힘을 많이 주면 그릇이 깨지고 살짝 잡으면 그릇이 로봇 팔에서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l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방 정리 챌린지’ (출처: 대회 공식 홈페이지)


지난 5월 하순 호주 브리즈번에선 ‘방 정리 챌린지(Tidy Up My Room Challenge)’라는 색다른 이름의 경진대회가 열렸습니다. 방을 청소하는 임무가 주어진 것은 사람이 아니라 로봇입니다. 호주 퀸즐랜드공대(Queensland University of Technology)와 호주 로봇 비전센터(ACRV: Australian Centre for Robotic Vision)가 ‘국제 로봇 및 자동화 콘퍼런스 (ICRA 2018)’의 부대 행사로 기획했습니다.


총 4개 트랙으로 대회가 진행됐는데 핵심은 방안에 위치한 테이블에 놓여 있는 여러 종류의 비정형 물체를 로봇 팔로 집어 각각 다른 바구니에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대회라서 그런지 3개 팀만 참여했는데, 중국 상하이 쟈오통 대학팀만 주어진 임무를 참관객들에게 시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l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방 정리 챌린지 현장 (출처: ICRA 2018)


사실 이런 방식의 대회는 ICRA 2018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것은 아닙니다. 아마존은 몇 년 전부터 로보컵(RoboCup) 대회 기간에 ‘아마존 피킹 챌린지(APC)'를 열어 로봇 파지(grasping) 기술 경쟁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나고야에서 열린 아마존 피킹 챌린지에선 호주 퀸즐랜드공대 ‘로보틱스 비전센터(ACRV)’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챌린지 과제는 로봇이 다양한 물건을 선반에 넣는 ‘스토우 태스크(Stow Task)’와 지정된 물건을 세개의 바구니에 분류하는 ‘피크 태스크(Pick Task)’를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바구니와 가방에 들어있는 양말, 테니스공 등 모양과 재질이 다른 품목을 정확히 구별해 하나씩 잡는 기술을 테스트했습니다.


ACRV는 3축으로 움직이는 직교좌표 로봇의 끝 부분에 집게 형태의 그리퍼와 물건을 흡착할 수 있는 장치를 부착해 과제를 수행했습니다. 들어 올리고자 하는 물체의 특성에 맞춰 그리퍼와 흡착 장치를 돌려가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게 우승을 결정지은 요인이었죠. 이 로봇은 인공지능(AI) 비전 인식 기술을 이용해 물체의 형태를 파악하고 어느 그리퍼로 잡을지를 스스로 판단한다고 합니다.


l 아마존 피킹 챌린지 2017에서 우승한 퀸즐랜드공대 ACRV팀 (출처: 퀸즐랜드공대)


아마존이 로봇 피킹 대회를 여는 이유는 고객들이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엄청난 양의 상품들을 신속하게 처리해 고객들에게 배송할 수 있는 기술을 서둘러 확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배송센터에 들어오는 상품들은 형태나 재질이 제멋대로입니다. 지금은 사람이 일일이 집어서 포장 작업을 하지만 앞으로는 로봇이 집어 사람들이 일하는 작업 공간으로 옮겨주고 궁극적으로는 포장 작업도 로봇이 하게 될지 모릅니다.


최근에는 소프트 그리퍼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미국 로봇 스타트업인 ‘소프트 로보틱스(Soft Robotics)’는 올해 다양한 비정형 물체를 집을 수 있는 ‘수퍼픽(SuperPick)’을 공개했습니다. 조만간 실제 제품 처리 공정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소프트 로봇은 인간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물건을 추적 및 분류하고 물건을 처리할 수 있는데 진공 흡착 방식을 이용해 시간당 600건의 피킹 작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l 소프트 로보틱스의 수퍼픽이 물건 파지 작업을 하고 있다. (출처: https://www.softroboticsinc.com/)


현재 로봇팔을 이용해 물체를 잡는 파지(Grasping) 기술은 크게 집게 형태의 그리퍼와 진공 흡착 장치로 크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각각 장단점이 있지요. 그리퍼는 딱딱한 물건을 집는 데 유리하지만 말랑말랑하거나 울퉁불퉁하면 잘 잡지 못합니다. 이에 반해 진공 흡착 방식은 울퉁불퉁한 물체도 잡을 수 있지만, 오랫동안 잡고 있는게 어렵습니다. 힘이 없어 중간에 맥없이 떨어뜨릴 우려가 있지요.


최근에는 그리퍼와 진공 흡착 장치를 하나의 로봇 팔에 구현해 제품의 속성에 따라 파지하는 기술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기술도 결합하고 있습니다.


MIT와 프린스턴대 과학자들은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 기술을 활용해 비정형 물체들이 쌓여 있는 박스에서 필요한 물건을 집을 수 있는 파지 알고리즘(Object-agnostic grasping algorithm)을 개발했습니다. 진공 흡착 컵으로 수직 방향에서 들어 올리는 방법, 진공 흡착 컵으로 측면에서 흡착하는 방법, 기존의 그리퍼로 인형 뽑기처럼 수직 방향으로 집는 법, 유연한 도구를 활용해 벽으로부터 물건을 떼어내면서 그리퍼로 수직의 방향으로 집어 올리는 법 등 4가지 파지 기술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소프트 그리퍼의 단점을 개선한 기술도 등장했습니다. 스탠포드대 로봇 과학자들은 UC샌디에이고(the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연구진과 공동으로 소프트 그리퍼 기술에 도마뱀의 강력한 접촉력을 결합한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도마뱀의 발바닥은 길이 50~100마이크로미터의 강모 수백만 개로 덮여있고, 이 강모에 또 지름 200~500나노미터의 섬모가 붙어 있습니다. 물체에 강력하게 붙으면서 떼어낼 때는 흔적 없이 분리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기존의 소프트 그리퍼는 물체를 장시간 잡고 있는 것이 힘들지만 이 그리퍼는 도마뱀의 발바닥처럼 강력한 접착력을 갖추고 있어 오랫동안 파지하는 게 가능합니다.


l 스탠포드와 UC샌디에이고 연구진이 개발한 소프트 그리퍼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pMvdK4VifDE&feature=youtu.be)


로봇이 생전 처음 보는 물체를 잡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기술적인 과제입니다. 올해 ‘ICRA 2018’에서 독일 카를스루에공대(Karlsruhe institute of Technology) 연구진은 심층신경망을 활용해 처음 보는 물체를 심도 카메라(Depth Camera) 정보만으로 다양한 파지가 가능하도록 하는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이에 앞서 '제프 말러(Jeff Mahler)‘ 등 UC버클리 연구진도 처음 보는 물체를 집을 수 있는 기술을 연구 중입니다. 가상의 공간에서 방대한 디지털 데이터를 보여준 후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지 않던 물건을 잡을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신경망 기술을 이용해 로봇을 훈련한 결과 주걱, 스테이플러, 과자를 담은 통, 치약 등을 90%의 정확도로 집을 수 있다고 합니다.


로봇 과학자들은 채소 등 식료품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그리퍼 기술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덴마크 허브 생산업체인 ‘로스보그 그린하우스(Rosborg Greenhouse)’는 온 로봇(On Robot)의 그리퍼인 ‘RG6’를 허브를 따고 포장하는 과정에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로봇 팔에 부착된 터치 감응식 RG6 그리퍼는 부서지기 쉬운 식물을 손상하지 않고 들어 올릴 수 있습니다.


l 허브를 따는 로봇 그리퍼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A_oQns-DsQo)


지금까지 소개한 연구는 물체가 고정된 위치에 있는 상태에서 파지하는 기술인데요. 움직이는 물체를 파지하는 기술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일본 히타치제작소는 이동 중인 자율주행 무인 반송 차(AGV)의 박스안에 있는 특정 물체를 이동 중에 피킹할 수 있는 로봇 그리퍼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카메라를 특정 장소에 놓고 AGV가 카메라 설치 공간을 통과하는 순간 물체의 상태를 촬영하고, 인공지능 로봇 그리퍼가 파지하는 기술입니다. 이동 중인 무인 반송 차에서 물건을 꺼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제품 생산이나 물류 처리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리퍼 기술의 미래는 아마도 사람의 손을 모사한 제품 아닐까요. 사람의 손은 어떤 물건도 손쉽게 집어 다른 곳에 옮길 수 있으니까요.


‘IEEE 스펙트럼’에 따르면 온라인 슈퍼마켓 오카도(Ocado)는 독일 카를스루에 기술연구소(KIT: Karlsruhe Institute of Technology), 스위스 EPFL, UCL(University College London), 이탈리아 로마 사피엔짜대학 등과 공동으로 인간과 로봇의 협동 작업을 목표로 휴머노이드 로봇인 ‘아르마르(ARMAR-6)’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휴머노이드 로봇은 사람처럼 도구를 이용해 시설 유지 보수를 하는 임무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연장통에서 유지보수 작업에 필요한 망치, 드라이버, 전동 도구를 집어 사람처럼 능숙하게 다루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죠.


l 다양한 도구를 사람 처럼 다루는 것을 목표로 개발되고 있는 아르마르-6 (출처: KIT, IEEE스펙트럼)


사람의 손처럼 능숙하게 온갖 잡다한 물건을 다룰 수 있는 로봇 그리퍼 기술은 언젠가는 미래에 우리의 삶의 공간에 자리 잡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과 로봇 간 협동 작업은 더욱 원활해지고, 로봇은 인간의 진정한 동반자로 우리 곁에 더욱 가깝게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로봇에게 말하기도 전에 로봇 스스로가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고 주인을 깨우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요?


글 l 장길수 l 로봇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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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T로 만드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갑니다 LG C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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