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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경험하게 될 인공지능

2016.12.21 09:30

1818년, 영국의 여류작가 메리 셸리는 괴기소설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인류사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졌습니다. 그녀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제네바의 물리학자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 신의 영역을 침범하게 됩니다. 그가 만들어낸 괴물 ‘크리처’는 결국 그를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소설이 던진 충격은 단순히 자신이 만든 괴물에게 끔찍한 죽음을 당하는 괴짜 물리학자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를 죽인 후에 ‘인간’에게만 있는 번뇌와 자책감으로 고뇌하는 괴물, 크리처의 독백이었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닮은 괴물을 만드는 것도 끔찍한데 그 괴물이 인간만이 느끼는 고뇌와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인류의 멸망을 예견하는 끔찍한 사건입니다.

 


그 후로 200년이 지난 올해 초, 우리는 인공지능 ‘알파고’에 천재기사 이세돌이 패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경험했습니다. 잘 학습된 수 천만 대의 컴퓨터와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단 한차례의 승리를 따낸 이세돌을 영웅으로 혹은 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위로를 하며 별것 아닌 것처럼 자조하며 넘겼지만, 그 뒷맛은 몹시도 씁쓸했습니다.


또한, 지난 5월 소설 ‘개미’로 유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한국을 방문하여 어느 방송국에서 인터뷰한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대국 이후 핫이슈로 떠오른 인공지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요. 

“컴퓨터가 바둑이나 다른 게임에서 인간을 이기느냐 마느냐가 핵심이 아니라, 자의식을 가진 인공지능의 등장이 더 중요하다.”며, 10년 안으로 의식을 갖춘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인 테슬라모터스 회장 앨런 머스크, 블랙홀 이론으로 우주의 탄생을 말한 스티븐 호킹 박사도 인공지능이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 경고합니다.
 
이처럼 많은 과학자들과 유명인사들은 강인공지능(Strong AI)의 등장에 대해서 우려를 표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 그것은 어쩌면 인간과 다른 생물체를 구분하는 특성인지도 모르니까요. 자아를 갖춘 기계, 그것은 우리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 통제해서는 안 되는 존재의 탄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은 강인공지능(Strong AI)과 약인공지능(Weak AI),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초 지능으로 분류합니다. 알파고처럼 바둑을 두고, 퀴즈대회에서 챔피언을 이기고, 사람 얼굴을 구별하는 등의 인공지능은 모두 약인공지능입니다.
 

 

약인공지능은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주워진 조건 하에서 지시를 따르는 것이 특징입니다. 아무리 인간 지능의 한계를 시험하는 인공지능이라 하더라도 ‘자아’가 없다면, 다시 말해 자신이 무엇이고 무엇이 자신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없다면, 인간의 통제 하에 움직이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아를 지닌 인공지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인간을 돕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그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자신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놓는다면 어떨까요? 제대로 된 인공지능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있는데요.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만간 인공지능의 시대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딥러닝 이후 가까워진 인공지능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래에 경험하게 될 인공지능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란 ‘인간의 학습 능력과 추론 능력, 지각 능력, 자연 언어의 이해 능력 등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실현한 기술’을 말합니다. 지능적 기계 특히 지능적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학과 공학으로, ‘인간처럼 사고하고 감지하고 행동하도록 설계된 일련의 알고리즘 체계’입니다.



1950년대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은 컴퓨터와 대화를 나눠 인간과 전혀 구별할 수 없다면 해당 컴퓨터를 생각하는 존재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인공지능을 판별하는 기준이 된 이 ‘튜링 테스트’는 인공지능 이론의 기반이 됐습니다. 


1956년 미국 다트머스 대학에서 처음 인공지능(AI)라는 용어가 사용됐고, 1990년대까지 관련 연구가 진행돼 왔으나 기술적 한계로 개발은 지지부진했습니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 기술과 빅데이터의 축적, 스스로 학습하는 형태의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을 통해 인공지능 기술은 크게 성장했습니다.


눈부신 속도로 진화하는 인공지능의 영역이 최근 금융 투자나 의료 영역은 물론 그동안 넘볼 수 없다고 여겨졌던 예술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실제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해 전문의와 똑같이 암을 진단할 수 있고, 금융시장에 진출한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는 펀드에서 진짜 수익을 내고 있는데요. 가까운 일본의 인공지능은 단편 SF 소설을 써 ‘호시 신이치’ 문학상 1차 전형을 통과했고, 예일대가 개발한 인공지능 ‘쿨리타’는 스스로 음계를 조합해 작곡을 하였으며, 구글의 그림 인공지능 ‘마젠타(Magenta)’는 올해 추상화 29점을 팔아 총 9만 7,000달러를 벌었습니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주로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할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이 지배적이지만, 대부분 전문가들은 이런 공포감은 과도한 것이며, 교통, 언론, 안전, 환경 등 각종 분야에서 관련 기술이 빠르게 융합, 확산돼 인공지능은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특히 금융과 자동차, 의료 부문에서 큰 변화를 이끌 것으로 전망하는데요. 금융 분야에서의 인공지능 투자 알고리즘, 의료 분야에서의 인공지능 착용 기기와 이미지 인식 기술 통한 개인 건강관리, 자동차 분야에서의 자율주행 자동차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제조업에서도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휴머노이드형 로봇의 개발로 기계설비의 고도화와 효율성 극대화가 이뤄질 전망인데요. 특히 외부 환경을 인식하고 상황을 판단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지능형 로봇의 활용도는 급속히 커질 예정입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에 관한 우려도 없지 않습니다. 특히 인공지능과의 일자리 경쟁이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로봇과 인공지능 등의 발달로 인해 연간 500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특히, 창조적인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던 예술 분야까지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완벽하게 구현해 내는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기계에 의해 인간은 잉여로 남을 것인가?


링컨 로봇이 대중에게 첫 선을 보인 것은 1964년 백남준 씨가 최초의 아트 로봇 K-456을 만들었을 때의 일입니다. 매우 허술하지만 그래 봬도 최초의 이족 보행 로봇이었습니다. 백남준 씨는 이 로봇으로 하여금 뉴욕 시내를 걷게 한 후 자동차 사고를 내는 퍼포먼스를 벌이고는 ‘21세기 최초의 사고’가 발생했느니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지요. 당시 이 로봇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했습니다. 만약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면서 말이지요.


지금도 비슷한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계적인 시장 조사기관인 가트너는 2018년에는 전 세계 300만 명 이상이 ‘로봇 상사’와 일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우려의 목소리에 백남준 씨는 “내 로봇은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저 로봇을 10분 동안 움직이는 데 다섯 사람이나 필요합니다.”라고 대답했는데요. 그 당시에는 이 말이 통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앞으로 인간이 하는 많은 일을 로봇이 대신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잉여’로 전락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쯤이면 인간은 이미 그 일을 버리고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다른 일을 하고 있을 테니까요. 


물론 현존하는 많은 직업들이 인공지능의 발달로 사라져갈 것입니다. 하지만 직업들이 그냥 사라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죠. 그 흐름의 반대편에서는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자리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한때 계산하는 실력은 오직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귀한 능력으로 여겨졌죠. 하지만 컴퓨터가 그 일을 하게 된 후, 계산은 더 이상 인간의 격조에 어울리는 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계산을 하던 인간은 이제 그 일을 기계에 맡겨두고, 바로 그 계산기를 프로그래밍 하는 업무로 전환했습니다. 이 예가 보여주듯이 기술만 진화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도 기계와 더불어 같이 진화합니다.


귄터 안더스(Günther Anders)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골동품화될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에는 한계가 없는데 인간의 진화 속도는 자연적 한계에 사로잡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둘 사이에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고, 그 격차가 멀어질수록 인간은 골동품이 된다는 거죠. 또 미래학자 레즈커즈 와일은 2045년경에 인간이 기계처럼 변하고, 기계가 인간에 가까워지는 이른바 ‘특이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사람보다 기계? 기계보다 사람?


3차 산업혁명 시대를 넘어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하며 컴퓨터를 비롯한 기계와 인간은 입장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기계를 통해 인간은 윤택한 삶과 편리함을 맛보기도 하지만, 더불어 기계 때문에 수많은 일자리를 잃고 기계보다 못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뒤바뀐 세상을 이야기하며 기계와 사람에 대한 입장 차이를 확인해 볼 필요가 생겼습니다.


미디어 철학자인 빌렘 플루세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래의 인간은 두 부류로 나뉠 것이다.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과 당하는 사람들’. 여기서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들은 바로 텍스트로 이미지를 그려낼 줄 아는 사람, 남의 이미지 아래에 깔린 텍스트를 읽어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언어 능력이고, 이것을 할 줄 모로는 사람은 문맹이 되는 겁니다. 아마도 미래의 문맹은 글자를 못 읽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지를 못 읽는 사람일 것입니다.


인공지능의 미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되는 전망이 존재합니다. 영화 [매트릭스]는 그중에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보여줍니다 거기서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프로그래밍을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마치 히틀러가 만든 세상을 자신의 세계로 착각하고 살아갔던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 사람들처럼 남의 프로그램을 자신의 세계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반면에 이상적인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프로그래머가 되는 사회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모든 영역에서 프로그래머가 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영역에서는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고, 그 특수한 영역에서 획득한 프로그래밍 능력만 있으면 다른 모든 영역에서 타인이 작성한 프로그램의 본질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그저 이상일뿐, 현실적으로는 앞으로 도래할 사회가 [매트릭스]에 가까운 모습일 것이라는 불길한 생각이 듭니다.

 

 

인공지능이 가져다줄 미래에 대해 저는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습니다. 굳이 예측을 하자면 그 어떤 비관 속에서도 인간은 결국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말론적 상황 속에서도 인류는 과거와 비교해 진보했고, 사회는 과거보다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사실 과거에 인간이 하던 많은 일을 이제는 기계가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삶이 더 편해졌나요? 물론 편해진 측면은 있을 겁니다. 세탁기 덕분에 빨래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자동차 덕분에 이동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조립 로봇 덕분에 생산에 드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지요. 그러나 우리가 일을 덜 하게 됐나요? 노동시간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구글이 인수한 보스턴 다이나믹스사에서 행한 로봇 개 실험 영상이 화제였습니다. 사람이 로봇 개를 발로 차자 로봇 개가 그 충격을 극복하고 다시 균형을 잡는 영상입니다. 이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가자 난리가 났습니다. 네티즌들이 동물 학대라고 집단으로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진 거죠.


이걸 정말 동물 학대라고 봐야 할까요? 사실 인간의 윤리의식이라는 게 상당 부분 ‘감정이입’에 기초해 있기에, 기계에까지 감정을 이입하여 기계 학대에 대해 윤리적 항의를 조작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무인운전도 마찬가지 경우죠. 급박한 사고 상황에서 기계가 행인을 보호할지, 아니면 운전자를 보호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기계를 이기주의적으로 프로그래밍해야 할까요? 아니면 이타주의적으로 프로그래밍해야 할까요? 아니면 속 편하게 그 판단을 랜덤 프로세스에 맡겨버릴까요? 

 

 

결국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 윤리와 사회적 문제인 것이죠. 


인공지능 시대가 디스토피아가 아닌 유토피아가 되기 위해서 기계와 인간은 대립이 아닌 협력과 동반자의 길을 걸어야 하며, 인간은 사회적 제도적 관점에서 능동적 참여를 기반으로 모두가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글 l 이상옥 l 테크노인문학연구소장

 

이상옥 씨는 테크노인문학연구소 소장으로 현장에서 15년 넘도록 IT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터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관련 서적을 출간하고, 강의와 비즈니스 컨설팅을 통해 실전에 적용하는 실무형 전문가이다. 현재는 데이터 거버넌스를 근간으로 비즈니스적인 통찰력을 통해 신사업과제를 발굴하고 구축하는 일을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저서: 가상현실을 말하다(2016), 빅데이터 적용이 답이다(2015), 모르면 손해보는 IT이야기(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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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T로 만드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갑니다 LG C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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