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Life

초기 컴퓨터의 진화

2016.02.29 09:30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산을 수행하던 정말 몇 안 되는 거대한 장치들은 이제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수십억 인구의 업무와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미치는 유연하고 강력한 유비쿼터스 장치로 변화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일으킨 발명과 혁신의 복잡한 과정을 간단한 연대표나 문서로 알기 쉽게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난 70년간 컴퓨터는 다른 모든 기술 제품을 완전히 능가하고 앞지르는 위대한 발전이 있었습니다. 이는 컴퓨팅 이론,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및 관련 산업에서 활약한 수백 명의 개척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오늘은 컴퓨팅의 초기 역사(트랜지스터 기반 기술의 전반적인 구현 이전)에서 발생한 몇 가지 핵심적인 사건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컴퓨팅의 초기에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던 작은 일에서부터 엄청난 변화가 발생하곤 했는데요. 그 좋은 예로 지난 편 ‘디버깅의 신화,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에서 사무처리를 위한 포트란(FORTRAN)이나 코볼(COBOL)과 같은 과학적 컴퓨터 언어와 컴파일러의 개발에 대해서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 디버깅의 신화,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 http://blog.lgcns.com/1021


1940년대 말, 컴퓨팅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컴퓨팅은 대중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미디어의 관심에서도 벗어나 있었으며, 정치 및 비즈니스 분야의 많은 의사 결정자들도 그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컴퓨팅의 대표적 이론가이자 수학계의 거물이었던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은 심지어 1949년에 "우리는 컴퓨터 기술로 도달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컴퓨터가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힌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5년 후에는 바보같이 들릴 수도 있으므로 이런 주장을 할 때는 조심하는 편이 좋습니다."라고 덧붙이기는 했지만 말이죠. 


John von Neumann(1903-1957)은 그의 게임 이론 연구를 통해 컴퓨팅과 다양한 측면의 수학 및 기타 분야(예: 경제)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헝가리 출신인 존 폰 노이만은 1945년 6월에 ‘First Draft of a Report on the EDVAC(EDVAC에 관한 보고서 초안)’을 집필하고 다음 해에는 ‘Preliminary Discussion of the Logical Design of an Electronic Computing Instrument(전자식 컴퓨팅 기기의 논리적 설계에 관한 1차적 토의)’를 공동 집필하면서 컴퓨터의 저장 이론을 제안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서로 다른 프로그램들을 실행하기 위해서 기계를 물리적으로 재배선하거나 기계 자체를 재구축해야 했으며, 이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었습니다. 


폰 노이만은 이진법(binary) 형태의 코드를 실행하면서 데이터와 프로그램 명령을 모두 저장할 수 있는 고속 디지털 컴퓨터를 제안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장치(컴퓨터)는 상당한 양의 메모리를 요구합니다. 이 메모리의 여러 부분은 특성 측면에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면서도 목적 측면에서는 크게 다른 다양한 함수들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전체 메모리를 하나의 기관으로 취급하면서, 동시에 메모리의 각 부분은 위에 열거된 다양한 함수를 수행할 수 있도록 최대한 교환 가능하게 만든다면 매우 흥미로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아이디어는 이러한 아키텍처를 갖는 컴퓨터가 실질적으로 데이터로 취급되는 프로그램 명령을 가지게 되어 다른 프로그램 및 명령으로 이를 수정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컴퓨터를 더 쉽고 빠르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어 사용자는 컴퓨터를 더욱 유연하고 강력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폰 노이만의 제한 사항들(strictures) 대부분을 준수하는 최초의 기계는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개발되었는데요. 이것이 바로 맨체스터 베이비(Manchester Baby)로 더 많이 알려진 SSEM(Small Scale Experimental Machine)입니다. 전기 공학 학과장인 프레디 윌리엄스(Freddie Calland Williams)와 톰 킬번(Tom Kilburn), 지오프 투틸(Geoff Tootill)이 기술 검증 기계로 디자인했던 이 기계가 바로 최초로 저장 프로그램을 사용한 전자 디지털 컴퓨터였죠. 그리고 윌리엄스가 개발한 음극선관을 전자 메모리로 사용했습니다. 윌리엄스 튜브메모리 시스템(Williams tubememory system)의 각 비트는 음극선관의 화면 인광체에 전하 형태로 저장되었고, CRT의 전자빔에 의해 제어되어 0 또는 1을 썼습니다.


Manchester Baby는 길이 5.2m, 높이 2.24m 크기로, 무게는 1톤이 넘었습니다. 이 컴퓨터는 3,500와트의 전력을 소비하고 메모리는 각각 32비트인 32개의 워드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948년 6월 21일, 맨체스터 베이비는 숫자의 최대 약수를 찾는 17개의 명령을 포함하는 최초의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실행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2의 18 제곱에서 최대 진약수(약수 중 그 수 자신이 아닌 약수)를 찾는데 52분이 걸렸으며, 210만 개의 명령을 실행하고 데이터 또는 프로그램 명령을 위해 메모리에 350만 번 액세스했습니다. 


윌리엄스는 다음과 같이 그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프로그램 하나를 열심히 입력하고 시작 스위치를 눌렀습니다. 즉시 디스플레이 튜브의 점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하다가 곧 멈췄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측한 위치에서 예상한 답변이 밝게 빛났습니다. 기억해야 할 순간이었습니다. 때는 1948년 6월이었으며, 이것으로 모든 것이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맨체스터 베이비 팀은 즉시 추가 연구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수학자이자 컴퓨터 이론가인 앨런 튜링(Alan Turing)과 연구원들을 영입하면서 팀원도 늘어났습니다. 앨런 튜링은 맨체스터 베이비의 긴 나눗셈 프로그램을 개발한 학자입니다. 이 팀은 다음 해에 맨체스터 마크 1(Manchester Mark 1)이라고 불리는 더 크고 실용적인 컴퓨터를 개발했습니다. 이 컴퓨터는 증가된 메모리 용량과 혁신적인 인덱스 레지스터를 자랑했습니다. 인덱스 레지스터는 반복 연산을 추적하거나 메모리 주소를 따라 이동하기 위한 빠른 카운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1949년 타임지에 실린 인터뷰에서 튜링은 컴퓨터의 미래에 대해 굉장히 희망적이었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맨체스터 마크 1은 앞으로 다가올 변화의 맛보기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그 역량을 실제로 알게 되기 전까지 컴퓨터를 다각도로 경험해 봐야 합니다. 새로운 가능성에 도달하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인간의 지능으로 커버될 수 있는 분야라고 해서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으며 결국에는 컴퓨터가 인간과 동일한 수준에서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맨체스터 마크 1으로부터 최초의 상용 컴퓨터 중 하나인 페란티 마크 1(Ferranti Mark 1)이 탄생했습니다. 이 컴퓨터는 1951년에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같은 해에 대서양 건너편에서는 유니박 1(UNIVAC 1)이 최초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페란티 마크 1은 3초에 600개의 10자리 곱셈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기계 계산기를 사용해서 계산한다면 하루 종일 처리해야 하는 업무량으로, 3초만에 처리하는 것은 아주 빠른 속도였죠. 


그렇지만 이 컴퓨터는 단순한 계산기 이상의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생물 성장의 초기 시뮬레이션을 수행하거나 컴퓨터에서 최초로 음악을 녹음하고 재생하기도 했습니다. 마크 1의 명령 세트에는 간단한 사운드 피드백을 제공하는 ‘hoot’ 명령이 포함되어 있었는데요. 프로그래머는 ‘hoot’ 명령을 반복하고 타이밍을 조절하여 높낮이가 있는 음표를 출력할 수 있었습니다. 앨런 튜링의 동료였던 크리스토퍼 스트레이치(Christopher Strachey)는 자장가인 ‘Baa, Baa, Black Sheep’과 글렌 밀러(Glenn Miller)의 곡인 ‘In the Mood’의 축소판 연주곡을 재생하도록 마크 1을 프로그래밍했습니다. 이 두 곡은 1951년 가을에 BBC에서 녹음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독일의 컴퓨터 과학자인 디트리히 프린츠(Dietrich Prinz) 박사가 1951년 11월에 페란티 마크 1을 사용하여 최초의 체스 프로그램을 작성했다는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캐슬링(킹과 룩을 한번에 동시에 움직이는 특수한 수) 동작이나 폰 승급이 되지 않는 등 몇 가지 제한이 있는 불완전한 상태였지만, 15~20분 안에 체스판에서 검은 말 또는 흰 말의 수천 가지 동작을 고려하여 가장 좋은 다음 동작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해에 크리스토퍼 스트레이치는 마크 1에서 체스 게임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Draughts)을 작성했습니다.


<Christopher Strachey가 작성한 1952 Draughts 프로그램을 Ferranti Mark 1에서 실행하는 그림>

군대 및 대학 실험실 이외에서의 상용 컴퓨팅은 페란티 마크 1, 유니박 1 및 LEO 1(Lyons Electronic Office 1, 이하 레오 1) 등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레오 1은 1951년에 최초로 프로그램을 실행했지만 2년의 추가 개발 기간이 지난 후에야 영국의 식품 및 케이터링 대기업인 J. 라이온스(J. Lyons & Co) 회사 직원들의 급여를 계산하는 실질적인 비즈니스 업무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회계 직원이 직원 한 명의 급여를 계산하는 데는 평균적으로 8분이 소요되었으나, 레오 1은 이 작업을 1.5초면 할 수 있었습니다. 레오 1은 영국 런던 해머스미스의 캐드비홀(Cadby Hall)에 있는 이 회사의 본사에 465 제곱미터의 공간을 차지했으며, 회사의 회계 및 물류 계획을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이 컴퓨터의 개발은 1947년에 2명의 고위 간부가 미국을 방문하여 원래 에니악(ENIAC) 팀원 중 한 명이었던 헤르만 골드스타인(Herman Goldstine)을 만나면서 추진될 수 있었습니다.


유니박의 성공으로 자극을 받은 미국의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도 여기에 가담하여 맨체스터 컴퓨터의 윌리엄스 음극선관 기억 장치를 그들이 제작한 실질적인 최초의 상용 컴퓨터의 핵심 구성 요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라이센스를 받았습니다. 


IBM 701은 과학 및 국방 분야에서 사용되도록 디자인되었으며 72개의 윌리엄스 튜브가 장착되었습니다. 한편 이 회사 최초의 업무용 컴퓨터인 IBM 702 또는 EDPM(Electronic Data Processing Machine)은 회사의 사용자들이 이진수 사용을 꺼려서 십진수로 작동되었습니다. 이 컴퓨터는 초당 400개의 나눗셈을 처리할 수 있었고, 천공 카드 판독기를 통한 입력은 분당 250개의 카드를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 개발된 와이어 매트릭스 프린터인 IBM 712는 컴퓨터에 연결할 경우 초당 1,000개의 정보 라인을 출력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혁신에는 많은 비용이 발생했는데요. IBM 702의 CPU만 임대하는 비용이 매월 미화 8,650달러에 달했습니다. 전체 시스템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매월 미화 13,000달러를 지불해야 했죠.


IBM은 좀 더 저렴한 컴퓨터를 제작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결과 1954년에는 IBM 650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 컴퓨터에는 윌리엄스 튜브 대신 더 저렴한 자기 드럼 기억 장치를 사용했습니다. 이 기억 장치는 원래 1932년 오스트리아의 구스타프 타우셰크(Gustav Tauschek)에 의해 발명되었는데요. 자기 산화철로 코팅된 실린더 외부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고정 위치에 있는 헤드로 '쓰기' 및 '읽기'를 진행했습니다. 타우셰크 버전에서는 실린더가 고정되었으나 이후의 디자인은 데이터 액세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회전식 실린더를 사용했습니다.


1962년 생산이 종료될 때까지 거의 2,000대의 IBM 650 시스템이 판매되었습니다.


IBM 650은 약 8.5KB의 자기 드럼 메모리를 가지고 있었고 매월 미화 3,250달러 정도의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고객 입장에서는 더 저렴하고 매력적인 제품으로 다가왔습니다. 최초의 IBM 650 제품은 1954년 12월 미국 보스턴의 한 생명 보험 회사에 설치되었는데요. 비즈니스용 컴퓨터에 대한 IBM의 영향력과 IBM으로부터 장비를 임대하는 대규모 고객 기반을 바탕으로 IBM 650은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결국 IBM은 상용 컴퓨터 부문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1956년에는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1,100대의 운영 컴퓨터 3/4이 IBM 650 모델이었죠.

1956년에 IBM은 세계 최초의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인 350 RAMAC Disk File을 출시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San Jose)에서 레이놀드 존슨(Reynold Johnson)과 그의 팀이 개발한 디스크 파일(Disk File)은 오늘날의 소형 디자인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높이 172cm, 길이 152cm, 폭 74cm의 이 하드 디스크는 냉장고 2배의 크기에 중량은 1톤에 가까웠으며 지게차로만 옮길 수 있었습니다. 


내부의 케이싱은 60cm 지름의 자기 플래터 50개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 플래터는 양쪽 측면이 산화철로 코팅되어 있어 총 100개의 데이터 저장 표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디스크는 전기 모터에 의해 분당 1,200회 회전했고, 총 3.75MB의 데이터에 해당하는 5백만 개의 문자를 저장할 수 있었습니다. 헤드 어셈블리가 약 0.9~1.1초의 액세스 시간으로 디스크를 읽었습니다. 


용량이 테라바이트에 달하고 액세스 시간도 1,500 밀리 초가 안 되는 현대의 하드 드라이브와 비교할 때 350 RAMAC Disk File은 보잘것없어 보일 수 있지만, 긴 검색•유휴 시간 없이 빠르고 직접적으로 데이터에 액세스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획기적이었습니다. 


IBM은 향후 20여 년 동안 하드 디스크 설계 분야에서 선두 자리를 지켰으며, 1963년에는 35cm 지름의 플래터 6개에 2.6MB를 저장할 수 있었던 최초의 이동식 하드 드라이브인 IBM 1311을 개발했고, 1973년에는 최초의 밀봉된 ‘Winchester’(당시의 개발코드명) 하드 드라이브인 IBM 3340을, 1980년에는 기가바이트 용량을 가진 최초의 상용 디스크 드라이브인 IBM 3380을 개발했습니다. 물론 이 당시에는 트랜지스터, IC 및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자리 잡았던 시기이지만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A Smart, Creative World: Past and Future' 연재 현황]


(1) 컴퓨터의 탄생, 시대를 앞서간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

http://blog.lgcns.com/950


(2)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

http://blog.lgcns.com/982


(3) ENIAC: 세계 최초의 빠른 컴퓨터

http://blog.lgcns.com/1001


(4) 디버깅의 신화,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

http://blog.lgcns.com/1021


(5) 초기 컴퓨터의 진화

http://blog.lgcns.com/1042


(6) 컴퓨팅의 미래를 보여준 더글러스 엥겔바트

http://blog.lgcns.com/1060


(7) 웹의 발명: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

http://blog.lgcns.com/1165


(8) 인터넷의 탄생

http://blog.lgcns.com/1171


(9) 위키의 탄생

http://blog.lgcns.com/1175


(10) 로봇의 발전

http://blog.lgcns.com/1182


글 ㅣ클라이브 기포드 (Clive Gifford) 




[관련 자료]


Computing: A Concise History– PeCeruzzi (MIT Press, 2012)

1940대와 1950년대 컴퓨팅의 발전에 대한 흥미로운 역사를 비교적 간단하게 보여줍니다.


Bit By Bit: An Illustrated History Of Computers – Stan Augarten (Houghton Mifflin, 1984)

초창기 컴퓨터 시대를 소개하는 서적으로 현재 절판 되었으나 도서관이나 중고 서적 판매점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John von Neumann and the Origins of Modern Computing – William Aspray (MIT Press, 2013)

John von Neumann과 그의 인생, 일, 컴퓨팅 분야에 끼친 영향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A Computer called LEO: Lyons Teashops and the World’s First Office Computer – Georgina Ferry (Harper Perennial, 2010)

Lyons Electronic Office 컴퓨터, 이 컴퓨터의 개발, 그리고 응용 분야에 대해 설명합니다.


http://curation.cs.manchester.ac.uk/digital60/www.digital60.org/anniversary/index.html

맨체스터 대학교의 전산학 60주년을 기념하는 웹 사이트로 Manchester Baby 및 Mark 1 컴퓨터를 제작한 팀에 대한 강연과 특집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http://www-03.ibm.com/ibm/history/exhibits/650/650_room.html 

여러분 중 거의 대부분이 IBM 아카이브의 전용 '열람실'에 있는 IBM 650 자료를 보고 싶어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컴포넌트 가이드, 기술 참조서, 적용 사례 및 고객 상세 정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http://news.bbc.co.uk/1/hi/technology/7458479.stm

가장 오래 전에 녹음된 컴퓨터 소리, 그리고 Manchester Baby의 탄생이 처음에 어떻게 보도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BBC 보도 자료입니다.


http://www.leo-computers.org.uk/

그 동안 만들어진 Lyons Electronic Office 컴퓨터들이 이룬 업적을 기념하는 LEO Computers Society의 공식 웹 사이트입니다.


http://web.archive.org/web/20130930082920/http://www.magneticdiskheritagecenter.org/MDHC/RAMACBrochure.pdf

세계 최초의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에 대한 자세한 기록 소책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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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T로 만드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갑니다 LG C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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