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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IAC: 세계 최초의 빠른 컴퓨터

2016.01.11 09:30


진정한 세계 최초의 컴퓨터는 무엇일까요? 일부 학자들은1940년대 초 독일 엔지니어인 콘라드 추제(Konrad Zuse)가 만든 Z2 및 Z3 머신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암호 해독을 위해 사용한 영국의 콜로서스(Colossus) 컴퓨터가 세계 최초의 컴퓨터라고 합니다. 


한편 다른 학자들은 1942년에 처음 개발한 아타나소프-베리 컴퓨터(Atanasoff–Berry Computer)가 최초의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 컴퓨터는 연립1차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목적으로만 설계되었으며, 프로그래밍이 불가능했습니다. 


다양한 계산과 작업 수행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 최초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는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 무어 공대에서 1943년~1945년 사이에 만들어졌는데요. 이 컴퓨터가 바로 에니악(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omputer, 이하 ENIAC)입니다.


ENIAC의 기능은 1946년 대중들에게 공개되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뉴욕 타임즈에서 "지금까지는 해를 구하기 어렵고 복잡했던 수학적 작업을 최초로 전자적인 속도로 계산하는 놀라운 기계"라고 묘사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언론은 그 잠재적 능력에 열광했습니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niac.jpg)


ENIAC은 포병 화기의 탄도 발사표 계산을 위해 탄생했는데요. 스마트 폭탄이나 미사일이 등장하기 훨씬 전, 포탄으로 목표를 정확히 맞추기 위해서는 발사 거리와 각도, 날씨, 풍속 및 풍향 등을 포함한 방대한 계산을 해야만 했습니다. 수천 개의 개별 산술 연산이 필요한 이 계산을 ENIAC 이전에는 수십 명의 훈련된 사람들이 기계 계산기 및 펜과 종이를 가지고 한 것이죠.  


1942년 무어 공대 교수진에 합류한 존 모클리(John Mauchly)는 ‘진공관 장치를 사용한 계산(The Use of Vacuum Tube Devices In Calculating)’을 5장의 메모로 작성하여 미군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모클리 교수는 이 메모와 후속 문서에서 진공관을 사용하여 숫자를 표현하는 방식을 제안했는데요. 이 방법을 사용하면 1초에 10자리 숫자 5,000개를 더할 수 있을 정도로 계산 속도가 수천 배 더 빨라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Project PX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에서 무어 공대의 젊은 졸업생인 프레스퍼 에커트(J. Presper Eckert)가 수석 엔지니어로 모클리와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요. 프로젝트 초기에 미국 국방부로부터 61,700달러의 지원금을 받고, 1944년 6월에 기계를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성된 기계는 괴물이었습니다. ENIAC은 길이가 30m가 넘었으며, 높이는 3m였고, 40개에 달하는 전면 패널은 폭이 약 0.7m였습니다. U자형의 전체 배치는 대형 연구실을 꽉 채웠으며, 무게는 27,000kg이 넘었습니다. 제작 비용은 486,000달러로 불어났습니다. 이 비용 중 상당 부분이 기계의 방대한 초기 전자식 부품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이 기계는 지역의 전기 시설망으로 연결되는 전용 전선을 통해 전력을 공급받았으며, 약 150kW의 전력을 소비했습니다. 이는 2,500대의 최신 와이드스크린 TV 또는 5,500대의 27인치 모니터에 사용할 수 있는 전력에 해당합니다.


모클리 교수의 초기 메모와 동일하게 ENIAC은 그 당시 최고의 속도를 자랑하며, 1초에 5,000번의 덧셈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나오는 프로세서와 성능과 비교하며 ENIAC의 연산 속도가 낮다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속도는 당시에 사용하던 다른 기계들보다 100배 이상 빠른 속도였습니다. 당시에는 숙련된 수학자가 책상용 계산기를 사용하여 60초의 포탄 탄도를 계산하는데 15~20시간이 필요했는데요. ENIAC은 같은 작업을 약 30초 만에 수행할 수 있는 놀라운 성능을 가진 기계였습니다. 


ENIAC은 1946년까지 무어 공대에서 가동된 후 1947년 1월에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애버딘 육군 장비 시험장의 탄도연구소로 옮겨졌는데요. 여기에서 ENIAC을 사용하기 시작할 당시에는 프로그램 저장 기능이 없었고, 새 프로그램을 만들 때마다 40개의 대형 전면 패널 배선반을 사용하여 물리적인 배선을 새로 연결해야 했습니다.

 

ENIAC을 위한 원조 프로그래밍 그룹은 부부 팀인 헤르만 골드스타인(Herman Goldstine)과 아델 골드스타인(Adele Goldstine)으로부터 지시를 받는 6명의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여성들은 논리적 차트와 전기 블록 다이어그램을 이용해 ENIAC의 작동 방법을 배웠습니다. 6명의 "컴퓨터"로 알려진 그 최초 그룹 중 한 명인 캐슬린 맥널티(Kathleen R. McNulty)는 1948년에 존 모클리(John Mauchly)와 결혼했습니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wo_women_operating_ENIAC.gif)


이 컴퓨터의 최초 과제 중 하나는 수소 폭탄 개발에 관련된 것이었는데요. 핵융합 연쇄 반응을 모델링하고 연구하기 위해 수백만 개에 달하는 방대한 계산을 수행했습니다. ENIAC은 작동기간  동안 80,223시간의 연산을 처리했으며, 무기 모델링은 물론 날씨 매핑과 예측, 난수 연구, 원자력 계산, 풍동 설계 및 우주 입자 조사와 같은 다양한 응용 분야와 프로젝트의 계산에 사용되었습니다.


약 10년 동안 활약한 ENIAC은 1955년 10월 2일 오후 11시 45분에 작동이 중단되었습니다. 컴퓨팅 기술의 진보로 더 신속하고 강력한 장치가 나타나 ENIAC과 같은 대규모 기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맨체스터 베이비(Manchester Baby, 맨체스터 소형 실험용 기계)는 1948년에 이미 메모리에 저장된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실행되었으므로, ENIAC처럼 대형 패널을 재배선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죠. 

ENIAC을 이끌던 팀은 이미 오래 전에 새로운 과제로 옮겨갔으며, 특히 에커트와 모클리는 1946년에 펜실베니아 주립대를 떠나 Electronic Control Company를 설립했습니다. 이 회사가 최초로 제작한 제품은 데이터를 자기 테이프에 저장한 최초의 장치 중 하나인 BINAC(Binary Automatic Computer) 컴퓨터였습니다. 후일 이 회사의 명칭은 EEMC(Eckert-Mauchly Computer Corporation)로 변경되었으며, 1950년에 Remington Rand사로 매각되었습니다. 


같은 해에 에커트와 모클리 팀은 획기적인 UNIVAC 1 컴퓨터를 만들어냈는데요. UNIVAC(Universal Automatic Computer)은 운영 및 재무관리용 대규모 데이터 처리를 위해 특별히 고안된 최초의 기계로, 숫자와 알파벳 데이터를 모두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10개의 자기 테이프 드라이브에 데이터를 저장했으며, 무게는 8톤이 조금 넘을 정도였죠. 


이 기계는 소규모의 초기 투표 샘플을 토대로 1952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를 성공적으로 예측하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 기계는 미국의 34대 대통령인 아이젠하워의 당선 결과를 1% 이내로 예측하여 크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현재 ENIAC의 두 부분이 무어 공학 및 응용 과학 대학의 무어 건물 100호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NIAC_Penn1.jpg)


ENIAC은 사용이 중지된 후 나중에 분해되어 런던의 과학 박물관에서부터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웨스트 포인트의 미국 육군 사관학교에 이르기까지 여러 박물관과 기관에 전시되었습니다. 


ENIAC 탄생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펜실베니아 전기공학과 학생들은 J. 반 데르 슈피겔(J. Van der Spiegel) 교수의 지시에 따라 CMOS(Complementary Metal Oxide Semiconductor) 기술을 사용하여 이 기계의 모든 기능을 다시 만들어 보았습니다. 새로 제작된 ENIAC-on-a-Chip은 큰 방을 꽉 채우던 과거 ENIAC과는 달리 7.44mm x 5.29mm 크기에 불과했습니다. 


프레스퍼 에커트는 1989년 인터뷰에서 “제 일생의 과업이 1/10제곱인치의 실리콘 크기로 줄어들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라고 말했는데요. 아무도 트랜지스터 및 칩 기술이 이렇게 빨리 발전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기술에는 정해진 각도를 벗어나 경로를 바꾸게 만드는 발명이 있으며,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는 것이죠. 


['A Smart, Creative World: Past and Future' 연재 현황]


(1) 컴퓨터의 탄생, 시대를 앞서간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

http://blog.lgcns.com/950


(2)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

http://blog.lgcns.com/982


(3) ENIAC: 세계 최초의 빠른 컴퓨터

http://blog.lgcns.com/1001


(4) 디버깅의 신화,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

http://blog.lgcns.com/1021


(5) 초기 컴퓨터의 진화

http://blog.lgcns.com/1042


(6) 컴퓨팅의 미래를 보여준 더글러스 엥겔바트

http://blog.lgcns.com/1060


(7) 웹의 발명: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

http://blog.lgcns.com/1165


(8) 인터넷의 탄생

http://blog.lgcns.com/1171


(9) 위키의 탄생

http://blog.lgcns.com/1175


(10) 로봇의 발전

http://blog.lgcns.com/1182


글 ㅣ클라이브 기포드 (Clive Gifford) 




관련 링크: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s webpages commemorating the 50th anniversary of ENIAC. (http://www.seas.upenn.edu/about-seas/eniac/)


The original technical report on he workings of ENIAC collated by Adele Goldstine, the mathematician who instructed the early operators of ENIAC.

(http://ftp.arl.mil/mike/comphist/46eniac-report/index.html)


A rare interview about ENIAC’s genesis with J.Presper Eckert.

(http://www.cs.princeton.edu/~chazelle/courses/BIB/eniac.pdf)


Posted by IT로 만드는 새로운 미래를 열어갑니다 LG C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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